출처: http://www.toyokeizai.net/life/hobby/detail/AC/5cb184218574b0d2647111bb5f8b7b0a/page/1/

저자: 사사키 노리히코

< Stanford Memorial Church

사진 출처는 위키(en)의 스탠퍼드 대학>


스탠퍼드(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에 와서가장 먼저 놀란 것은 한국인 유학생의 존재감이었습니다. 물론 중국인 학생도 많습니다만, 그보다는 한국인 유학생의 급격한 증가가 인상적입니다.


현재 스텐퍼드에 있는 한국인 대학원생수는 395. 1995년의 159명에 비해 2배 이상으로 증가했습니다. 이제 한국인 대학원생은 중국(대학원생수 457), 인도(382)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스텐퍼드의 일대 세력이 되어 있습니다. 인구 약 5000만 명밖에 안 되는 한국이 그 26배의 인구를 가진 중국과 필적하는 유학생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 기세가 계속된다면 가까운 장래에 한국인은 유학생 중 최대세력이 될 지도 모릅니다.

최근 컬럼비아(Columbia University) 대학에서 놀러 왔던 중국인도 내가 살고 있는 기숙사에서 만나는 아시아 사람 중 대부분이 한국인이라고 말하였던 것을 보면, 이런 경향은 뉴욕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한국인 유학생을 보면서 감탄하게 되는 것은 영어에 대한 높은 학습의욕입니다.

스탠퍼드에서는 유학생 대상의 영어수업이 열리고 있는데, 거기에 참가하는 학생의 반 이상이 항상 한국인. 때때로 여긴 한국인가?’라고 착각할 때도 있을 정도입니다. 한글은 언어적으로는 일본어와 비슷할 정도로 영어와는 갭이 큰데도 불구하고, 영어를 말하는 힘을 급속히 키우는 노력에는 머리가 수그러집니다. 한국에서는 영어 조기교육도 활발하다고 합니다.예전에 한국인 클래스메이트가 아장아장 걷고 있는 딸에게 영어를 열심히 가르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일본과 비교하여 영어교육열의 차이를 느꼈던 적이 있습니다.


조국에 대한 상반된 감정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까지 유학이나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일까요?

추상적인 답으로써는 [21세기 글로벌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만, 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에서 일하기 위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만나보았던 한국인 유학생, 특히 자연과학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 중에서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 사람은 거의 본적이 없습니다. 대다수는 계속 미국에서 일을 하고 싶다’, ‘일정기간 미국 연구소나 대학에서 일하고, 그 다음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학생들입니다. [한국인=애국심이 강하다]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에, 이 반응에는 놀랐습니다(물론 조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애국심의 강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만……) 오히려 자국경제가 활발하게 발전하는 것도 있어서인지, 중국 유학생 쪽이 조국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많은 듯 합니다.


경제성장률도 일본에 비하면 높으며(2007년은 5.0%), 삼성, LG, 현대라는 글로벌 기업도 있는데 어째서 그들은 나라를 떠나려 하는 것일까요?

우선 장래에 대한 불안을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저출산(출생률은 일본보다도 낮다)], [소득격차의 확대(비정규직과 정규직 사원의 임금문제 등)], [중국과의 가혹한 경쟁] 등과 직면해 있어, 미래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가지는 것이 어려운 것은 확실합니다. 최근도 통화위기설이 그럴 듯하게 퍼져, 경제의 기초가 강고하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 그 이상으로 절실한 것은 역시 인생에 대한 적은 선택기일 것입니다.

예전에 한국에서 오랫동안 생활을 한 어느 일본인이 한국에서는 모두가 의사나 변호사를 목표로하며 가혹한 경쟁을 하고 있다. 정말 피곤할 것이다고 한탄하셨던 것이 생각납니다. 물론 일본에서도 의사, 변호사는 인기입니다만 제조업, 금융업, 서비스업 등 모든 업계에 매력적인 직업이나 일이있습니다. 여러 업계에 세계적인 기업이 있어, 직업 선택기가 풍부한 것은 미국 이외에 일본과 독일 등 일부 선진국에 한할 것입니다.


경쟁이라는 것은 확실히 중요합니다만, 경쟁으로 싸울 만한 분야가 한정되어 있다면, 사회는 다양성이 증가하기보다는 획일성이 늘게 됩니다. 그리고 일본이상으로 심한 수험전쟁, 학력경쟁이 그 경향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뜨거운 교육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용기]에는 배울 만한 점이 많습니다만, 한국인 유학생에게는 [우물 안 경쟁에 지쳐서 도망쳐 왔다]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확실히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일을 하는 것은 한국인


이전 이과계통의 한국인 유학생에서 스탠퍼드에서 박사학위를 따면 미국에 남지 않더라도 삼성이건 LG 등어디에건 취직할 수 있잖아?”라고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저렇게 아침부터 밤까지 오랜 시간 동안 일하는 것은 싫다”.

물론 회사나 일하는 부서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한국도 일본과 견줄 정도로 근로시간이 긴 것으로 유명합니다. 2005년도 OECD의 조사에 따르면 한국 근로시간은 OECD 국가에서 톱. OECD 국가 평균인 주간 약 38시간(휴일은 제외)에 대해, 한국인 평균은 45시간입니다(참고로 일본은 34시간입니다만, 잔업이 있기에 더 길 터).

더구나 삼성에서 일한다고 하여도 일이 기술자나 연구원에게 있어서 흥미롭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삼성의 인기분야는 마케팅이나 디자인으로, 기술자나 연구원은 주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기술자천국인 에서 일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결국 현재의 유학 붐은 [한국인]의 국제경쟁력 향상으로는 이어져도, 국가로써의 [한국]의 저력을 높이는 것으로는 이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국가의 인재들이 미국으로 유출되는 의미로써는 국가에 있어 마이너스일지도 모릅니다. 중장기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조국의 산업발전의 중추가 될지도 모르며, 세계에 걸쳐 활약하는 화교(華僑)와 같은 존재가 될 지도 모르고, 어쩌면 미국시민이 되어 조국에는 돌아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반대로 일본에서는 지금까지 쌓아왔던 부()와 거대한 국내시장 덕분에 젊은이의 유출이 큰 흐름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들은 일본을 이렇게까지 큰 경제로 키워 올린 앞 세대에 감사함과 동시에 일본경제의 경쟁력을 올리기 위해서 국내에 매력적인 직업, 일 등을 남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야구계와 같이, 일본의 일류인재가 계속에서 해외로 유출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내에 매력적인 직업이나 일이 없어져 어쩔 수 없이 해외로 나가야만 하기 전에 우리들이 먼저 해외로 나가 일본경제, 일본기업의 경쟁력향상에 이바지한다 그러한 용기도 지금의 일본인에게는 필요한 것이 아닐까요?


Ps; 이 글은 자이(東洋経済) 자동차, IT업계를 담당하던 저자(사사키 노리히코(々木 紀彦)가 휴직 후 스탠퍼드 대학 대학원에 다니면서 쓰는 시리즈 기사인 [젊은 기자의 스탠포드 유학기(若手記者スタンフォ学記)]2008-09-16일에 실린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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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9.23 00: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읽다보니 씁쓸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가혹한 경쟁을 한다는데는 끄덕여집니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23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조금 새는 이야기지만, 몇 년전 일본 남자 어린이들의 장래희망 1위가 &quot;목수(大工)'였다고 합니다(수 년간 1위였던 '프로야구 선수'를 제쳤다는 것으로 일본에서는 잠시 화제가 되었었죠)
    확실히 선택의 폭은 일본이 한국보다는 넓은 듯 합니다.

    (아울러 뻘소리 하자면... 이 글에 따르자면 현 정부의 영어교육강화는 역시 한국보다는 미국을 도와주기 위한 방침인 것 같습니다...뻘소리니까 심각하게 받아 들이지 마세요~)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paak81 BlogIcon 파악 2008.09.23 10: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요. &quot;영어[囹圄]는 감옥이다&quot;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23 20: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확실히 그런 말이 있었군요 ^^
    제 살아 생전에 한국사회가 영어의 몸에서 풀어나는 것을 보았으면 좋겠군요.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9.23 23: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무튼 한국을 벗어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입장에서.. 확실히 한국의 교육은 가혹한 면이 있죠. 저는 맘 편하게 보고 싶은 책을 보며 살고 싶은데, 봐야 할 책은 정해져 있고, 그책을 열번이고 스무번이고 돌려봐야 '성공'하는 좁은 길밖에 없으니까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23 2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생각하기에 우리 나라의 현재까지의 교육은 인간...이기 보다는 부품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서 개성을 지켜왔던 이는 군대라는 이름의 틀로 부품에서 필요없는 부분을 깍아 알맞은 모양으로 만들더군요. 본문에서 언급한 다양성 보다는 획일성이 늘어나는 사회...

    다메엣찌님이 말씀하신 '봐야 할 책이 정해져 있다'는 말에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정말 한국에서는 '성공'이라는 단어가 너무 한정된 듯 합니다.

밤 사이 한국을 강타한 요미우리 신문의 기사를 번역해 보았음...

 

출처http://www.yomiuri.co.jp/politics/news/20080714-OYT1T00501.htm

저자: 読売新聞

게재시간: 20087142234

 

 정부가 중학교 사회 교과서의 새로운 학습지도 요령해설서에 타케시마(竹島문제를 처음으로 명기한 것은타케시마의 소유에 관해서 지금까지의 교육이 불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단지한국 측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일한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 염려되고 있다.

 

 타케시마 문제를 둘러싸고는, 2005 3나카야마 나리아키[中山 成彬] 문부과학상(당시)이 국회에서 "다음 번 학습지도 요령에서는 확실히 써야 할 것이다"고 답변하여이번 학습지도 요령의 개정 작업에서 검토가 되었다하지만 새로운 요령안의 발표시기가 올해 2월 한국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식과 겹쳐문부과학성은 일한 관계에 대한 영향을 고려하여 기재를 미루었다이에 대해자민당 내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생겼기 때문에문부과학성은 해설서에 명기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러한 움직임에 한국측은 민감하게 반응했다기술하는 것의 조정이 마무리에 다다른 이번 달 9이 대통령은 홋카이도우[北海道] 토우야코[洞爺湖] 서미트 회의장인 호텔에서 후쿠다[福田] 수상과 서서 이야기를 하였을 때우려의 뜻을 표명관계자에 따르면수상이 "타케시마를 쓸 수밖에 없다"고 알리자대통령은 "지금은 곤란하다기다리길 바란다"고 요구했다고 한다.

 

 일본 정부 내에서는 "한국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지만말해야 할 것은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수상의 의향을 따르면서표현에 대해서는 허용되는 만큼의 최대한 조정을 거듭했다.

 

 토카이"渡海" 문부상은 11수상관저에서 마치무라 관방장관을 방문하여, 2종류의 문안(文案)을 제시했다하나는 북방영토의 기술에 이어 [타케시마 등도 언급하여북방영토와 마찬가지로 우리 나라의 영토영역에 대해서 이해시키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는 A또 하나는 이것에 이어 [또한 타케시마에 대해서는 한국도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한국의 주장을 기록한 B안이었다최종적으로는 13일 밤, A안의 전제를 [우리 나라와 한국과의 사이에서 타케시마를 둘러싸고 주장이 상반된다는 것 등도 언급]하는 것으로 결착되었다.

 

 자민당 내의 보수파 의원은 [우리 나라의 고유 영토]라는 표현을 미룬 것에 대한 불만이 나오고 있다나카가와 쇼우이치[中川 昭一] 전 정조회장은 14, [한국에 양보하여애매한 기술이 되어버렸다견해서에 쓰는 것이라면 고유의 영토라고 쓰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여정부의 대응을 비판했다.

 

 한국 측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이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내세워일한관계가 좋은 쪽으로 나아가고 있었던 만큼일본 정부 내에서는 [명기하는 것은 당연하지만타이밍이 좋지 않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마치무라 장관은 14일 기자회견에서 [일한관계가 어긋나 버리면, (북한의 핵 문제를 둘러싼) 6개국 협의의 프로세스나납치문제를 포함한 일본-북한간의 여러 현안 해결에도 악영향을 끼칠지도 모른다]고 말하며일한 쌍방의 냉정한 대응을 호소했다.

 

ps; 기사의 분위기를 전하려고 하다보니 한일을 일한으로, 독도를 타케시마로 하였음. 이건 이해를...

ps2; 대충 한 것이니 세세하게 파고 들어가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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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7.20 01: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영토문제와 여러 역사적 문제들을 해결하지 않고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가 될 수 있을지...

    독도가 예로부터 우리 땅임은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
    일본은 북방영토와 센카쿠열도 문제에 왜 독도까지 끼워서 지X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3군데를 찌르다보면 한 개는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서 그러나 봅니다
    아니면 현재 문제가 되있는 지역들을 일본에 편입시키기 위해
    중국 동북공정처럼 치밀하게 준비했는데 그 첫번 째가 우리거나요

    결론은 우리 대한민국이 그렇게 만만해 보이나 봅니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7.20 1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일이라는 좋은 선례가 있는데도 지키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럴 생각이 없는 듯이 보입니다.

    세 곳을 찌르다 한 곳이 떨어진다....충분히 가능성은 있는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치밀하게 준비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라 딴짓거리(상대방하고 서로 싸우기)하느라 신경을 안 써서 그러고 있다가, 일본이 이야기하면 뜬금없는 소리한다고 그러니 항상 땜빵메우기 식으로 되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일본에게 가장 유리한 것은, 독도는 일본이 주장하는 대륙붕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

    만약 제가 2mb였다면, 미국 만난 다음에 일본에 나중에 간다고 양해를 구한 후 몽골에서 중국과 러시아와 회담을 열어 일본과의 영토 대응을 확약한 다음에 일본으로 갔겠습니다만... 뭐 2mb는 정치적 배경이 배경인 만큼 불가능한 이야기였겠지만요.
    (아직까지 러시아랑 만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우선 2mb는 에러)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mychula BlogIcon 박선생 2008.07.20 12: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2mb는 요즘 뜨고있는 러시아를 뭣도 아닌 걸로 보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현대자동차가 러시아에서 자동차공장 준공식을 가졌다는데 한국 정부에서는 아무도 안 보냈다고 합니다. 2mb께서 몸소 못 가시더라도 고위관료 몇몇이라도 보냈어야하는데 말이죠(러시아에서는 미리 한국정부에 메세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우리는 준공식 때 메드베데프는 안되겠고 푸틴이나 고위관료 보낼게, 너흰 누구보낼래?')
    시장경제라지만 아직 공산주의 시절의 모습들이 남아있는 러시아에선 그렇게 준공식에 나라의 수상이나 고위관료가 참석한다는 건 전폭적인 지원을 해주겠다는 의미도 있다는데
    몇 년 전 토요타가 러시아에 공장을 세웠을 때랑은 너무 다르다고 합니다
    일본 정부에서는 일본 외상이 방문해서 좀 도와주십사했다죠

    아직도 갈피를 못 잡는 외교를 하고 있다는 점에서 2mb는 정말 에러인 거 같습니다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7.20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 일도 있었군요... 허...거 참...實用인지 失用인지...
    (...정말 어처구니 없군요)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 家康]에게는 평생에 걸쳐 결코 잊지 못할 억울한 일이 하나 있다.
 "마왕"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명사 였던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의 명령에 따라 아들인 노부야스[信康]와 마누라 츠키야마도노[築山殿]를 자신의 입으로 사형선고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동맹자의 명령이라고는 해도 자신의 손으로 마누라와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이에야스에게도 엄청난 고뇌가 뒤따랐을 것이다...

 하지만 이 '노부나가의 명령에 따른 노부야스, 츠키야마 살해사건'은 어딘가 이상하다.
 우선 사건의 개략을 살펴보자.


 1560년 5월.
 오다 노부나가는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 義元]를 오케하자마[桶狭間]에서 물리쳤다. 그리고 3년 뒤 천하통일을 목표로 토쿠가와 이에야스와 동맹을 맺는다. 동맹의 증거로써 노부나가의 딸 토쿠히메[徳姫]와 이에야스의 아들 노부야스의 결혼이 성립된다.

 그리고 1570년.
 이에야스는 그때까지 거성이었던 오카자키 성[岡崎城]을 아들 부부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새로이 지은 하마마츠 성[浜松城]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리고 10년 정도 흐르자... 이에야스의 처 츠키야마도노가 등장하여 쓸데없는 참견을 한다. 아들 노부야스 부부는 금슬이 좋아 사이에 딸 두 명을 두고 있었지만 아들이 없었다. 그래서 토쿠가와 가문의 장래를 걱정한 츠키야마가 노부야스에게 미녀를 보낸다. 노부야스는 그 미녀에게 빠졌을 뿐만 아니라 오카자키 성 밑 마을에서 유행하던 풍류춤[風流踊り]에도 흠뻑 빠져버린다.
 거기에 츠키야마도노도 타케다[武田] 측의 스파이 겐케이[減敬]를 통해서 타케다 측과 내통할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다. 츠키야마도노의 모친은 노부나가가 죽인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여동생이다. 노부나가에게는 처음부터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던 것이다.
 이런 것을 보고 그 때까지 무시 받고 있던 토쿠히메의 역습이 시작되었다(이번에는 노부야스의 부인 토쿠히메의 등장인 것이다). 토쿠히메는 지금까지의 사정을 편지에 적어 그것을 사카이 타다츠구[酒井 忠次]를 통해서 애비 노부나가에게 보냈다. 편지는 12개조로 되어 있어 그 중의 2~3개를 거론해 보면,

-. 요즘 오카자키 성 밑 마을에는 춤이 유행하고 있는데 노부야스는 그 춤에 빠졌을 뿐만 아니고 춤 실력이 떨어지는 사람을 맘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활로 싸 죽였다.
-. 노부야스는 토쿠히메에게 딸려 온 시녀 코지쥬우[小侍從]를 자주 고자질한다고 입을 찢어 죽였다.
-. 츠키야마도노는 타케다의 스파이 겐케이라는 의사와 밀통하고 있으며 오다 토쿠가와 가문과 오다 가문을 망하게 해달라며 부탁하고 있다.
 이 편지를 읽은 노부나가는 반신반의하면서도 사실관계를 사카이 타다츠구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사카이 타다츠구는,
 "12개 중 10개는 사실이옵니다"
 며 인정해 버린 것이다. 노부나가는 노발대발했다. 화를 냄과 동시에 이것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

 노부나가에게 는 적자로 노부타다[信忠]가 있다. 그러나 기량이 노부야스보다 훨씬 떨어지기에 내심 장래를 걱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노부타다와 노부야스의 시대가 된다면 노부타다는 노부야스의 쨉도 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호기로 삼아 노부야스를 죽인다면.... 이라고 생각하여,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와 츠키야마도노의 사형을 명했다.

 이에야스는 앙천했다. 그러나 이에야스에게 있어 시국이 어려운 이 때에 노부나가와의 동맹을 깰 수도 없어 눈물을 삼켜가며 부인 츠키야마를 죽이고, 다음에 아들 노부야스의 배를 가르게 하였다.
이상이 사건의 개략이다.....

◎ 노부나가는 이에야스에게 기대고 있었다?!

 이 사건은 거의 정사로 취급 받고 있으며, 이 사건을 근거로 만들어진 토쿠가와 이에야스 관련의 소설, 영화, 텔레비전 드라마에서는 고뇌하는 이에야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정말로 이상한 점이 많다. 그 이상한 점을 거론해 본다.

 우선, 이에야스에게 노부야스의 죽음을 명한 노부나가인데, 아무리 마왕이라 불리며 공포의 대명사라고는 하여도 이때 이에야스가 어쩌면 반항할지도 모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던 것일까? 반항까지 안 가더라도, 부인과 아들의 죽음까지 명령하는 노부나가와는 더 이상 같이 못 해 먹겠다며 동맹을 파기해 올 것이라고 생각을 안 했을까??
 그랬다면 정말로 곤란한 것은 노부나가였을 터인 것이다. - 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당시 상황은 이에야스보다는 노부나가가 힘든 때였다.

 노부나가는 [천하포무(天下布武)]를 선언해, 무(武)의 의한 천하통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변에는 이에야스 이외에 모두 적들뿐이었다.
 그 때문에 에치고[越後]의 우에스키[上杉]에게는 시바타 카츠이에[柴田 勝家]를, 츄우고쿠[中国]의 모우리[毛利]에게는 하시바 히데요시[羽柴 秀吉]를, 탄바[丹波]에는 아케치 미츠히데[明智 光秀]를, 이세[伊勢]에는 타키가와 가즈마스[滝川 一益] 등 장수들을 각지에 파견하고 있었다.

 이것 외에도 '나가시노 전투[長條合戦]'에서 타케다 측과 싸워 한번은 이겼다고는 하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 勝頼]는 살아 남아 반격의 틈을 노리고 있었다. 거기에 에치젠[越前]의 잇코잇키[一向一揆]가 힘을 길려왔지, 칸토우[関東]에서도 호죠 우지마사[北条 氏政]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당시의 상황은 이렇게 노부나가의 주위가 모두 적 투성이로 기댈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에야스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있다. 당시 노부나가에게 적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내부를 다스리기에도 바빴다. 부하인 시바타 가츠이에와 하시바 히데요시의 불화를 시작으로, 우군으로 편입한 마츠나가 히사히데[松永 久秀]가 배반, 이어서 아라키 무라시게[荒木 村重]도 배반...이란 상태였다.
(상기는 세세히 따지면 오류가 있다. 그냥 대세가 그런 분위기였다…는 정도로 하자 – 역자 가필)

 노부나가에게 있어, 정말 기댈 수 있는 것은 이에야스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 이에야스에 대해 딸이 푸념을 했다는 정도로 '처와 아들을 죽여라'며 잔인하고 위험한 명령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덧붙여 노부야스의 기량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면서 호기라 생각해 죽이라고 명령한 것도 이상하다. 딸인 토쿠히메의 말이 사실이라면, 노부야스는 춤에 빠진 얼간이에 아무렇지도 않게 백성을 죽이는 바보인 것이다. 기량을 두려워하기는커녕 그 정도라면 가만 놔두어도 자멸할 터이다. 노부나가의 아들 노부타다는 그런 춤에 빠진 노부야스보다 바보였던 것일까?

 이에야스가 둘을 죽인 것은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 죽인 날짜도 이상한 것이다.
 위에서 적은 개략에서는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둘을 죽여라'하고 노부나가가 명령한 것이 1579년 7월16일. 그리고 이에야스가 자객을 풀어 츠키야마도노를 죽인 것은 8월29일인데, 이 사이 한달 반이나 걸린 것이다. 시간이 너무 걸린 것은 아닐까?
 노부나가의 성격으로 본다면 말한 것은 곧바로 실행시켰어야 할 터이다. 더구나 그 이유가 [타케다와의 내통]이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한달 반 동안이나 그대로 놔두고 있었던 것일까??
 더불어 이 츠키야마도노와 노부야스를 한꺼번에 죽이지 않은 것도 이상한 점이다. 최종적으로 노부야스가 자인을 명령 받은 것은 츠키야마도노의 죽음에서 또 보름 정도 지난 9월 15일인 것이다.

◎ 이에야스에게 있어 처와 아들은 방해물이었다??!!

 어쨌든 이 사건에는 이상한 점이 많은데 이 [이상함]은 사건에서 노부나가를 빼버리면 부드럽게 연결되어 간다.
 처음부터 노부나가의 명령 따위는 없었다. 노부나가의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후세의 창작인 것...이라고 해 보는 것이다.

 노부나가가 명령했다......고 쓰여 있는 것은 [徳川実紀[각주:1]], [改正三河風土記[각주:2]], [武徳編年集成[각주:3]] 등 전부 후세의 것으로, 또한 이에야스를 신군(神君)으로 쓰고 있는 자기네들끼리의 것들뿐이다. 이에야스에게 불리한 것들은 쓰여 있지 않다.

 노부나가에게 명령 받았다는 것은 창작이라고 하면 어떻게 되는가?
 츠키야마도노와 노부야스는 이에야스 자신의 뜻으로 죽였다...... 는 것이 된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에야스 스스로 사랑하는 처와 귀여운 아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생기게 된다.
 사실 이에야스는 더 이상 츠키야마도노와의 사랑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1570년.
 이에야스는 그때까지의 거성인 오카자키 성을 노부야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신축한 하마마츠 성으로 옮겼다. 이때 츠키야마도노는 하마마츠로 가지 않고 노부야스와 함께 오카자키에 남아있었다. 이후 7년간 이에야스는 츠키야마도노와 별거 상태였던 것이다. 사랑이라고는 없었던 것이다.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여기에 있다.

 츠키야마도노와 노부야스는 이에야스의 영지(領地) 왼쪽 반인 오카자키 성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다. 이에야스는 오른쪽 반인 하마마츠 성을 근거지로 하고 있었고....
 당시 노부야스는 21살로 이에야스는 36세. 가신들은 자연히 좌와 우로 나뉘어져 있었다. 결국,노부야스를 맹주로 하는 [오카자키 파]와 이에야스를 맹주로 하는[하마마츠 파]로 나뉘어져 있었던 것이다. 파벌이 생겼던 것이다.

 적으로부터의 공격보다도 내부 분열을 우려한 이에야스는 기선을 제압해 오카자키 파의 중심인물 츠키야마도노를 죽였다. 그리고 오카자키 파 면면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주요인물들을 확인해 내기 위해서였다.
 그런 뒤에 오카자키 파의 중핵인 노부야스에게 죽음을 명한 것이다. 귀여운 아들이라고 할 틈은 없었다. 파벌을 형성하여 영지를 둘로 나누려 했던 움직임이 있었던 것이기에, 귀여워했던 만큼 미움도 그 만큼 커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타케다 신겐[武田 信玄]도 파벌항쟁 과정에서 아들 요시노부[義信]를 죽음으로 몰아넣었으며, 다테 마사무네[伊達 正宗]도 동생 코지로우[小次郎]를 참살하였다.

 덧붙여 주요인물로 확인된 [오카자키 세 행정관(岡崎三奉行)]인 고우리키 키요나가[高力 淸長], 혼다 시게츠구[本田 重次], 아마노 야스카게[天野 康景] 등의 가신은 오카자키 파에 속하였기에 사건 후 푸대접을 받았고, 오카자키 파의 필두가로(筆頭家老)였던 이시카와 가즈마사[石川 數正]는 참을 수 없어 토쿠가와 가문을 떠나 히데요시에게로 도망친 것이다.
(이 부분은 오버. 대부분 이후에도 중요한 일들을 맡았으며 카이에키나 푸대접 등에는 각각의 사정이 있었다. - 역자 가필)

 이에야스를 신군으로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자기들끼리의 책이었기에 이러한 이야기를 그대로 쓸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토쿠히메의 푸념, 노부나가의 잔인한 명령 등이 창작되어 눈물을 꾹 참으며 신군 이에야스는 사랑하는 처와 아들을...... 이 된 것이다.

 츠키야마와 노부야스의 살해는...... 이에야스 본인의 의사였던 것이다..

ps; 이 글은 1994년에 발간된 고토우 쥬이치[後藤 寿一]의 [뭔가 이상하잖아! 일본사(なんかヘンだぞ!日本史)]에 있던 것을 번역한 것입니다.예전에 하이텔 전클에 올렸던 것을 조금 손 봐서 올립니다. 조금 오버기가 있지만 그냥 그런 흐름이었다고 생각해 주시길... 세세하게 파고드면 양이 너무 많아져요~(그래서 그런 능력이 없어서 번역해서는 올리는 것입니다. --; )

  1. 에도 바쿠후의 공식 기록서. 19세기 전반 즈음 편찬되었다고 한다. [본문으로]
  2. 토쿠가와 가문의 역사를 기록. 19세기 전반 편찬. [본문으로]
  3. 이에야스의 전기. 18세기 중반에 작성.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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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zinil2 BlogIcon zinil2 2008.06.29 21: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밌는 글이네요. 읽고 나서 끄덕끄덕합니다^^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belldandy314 BlogIcon 맹꽁서당 2008.06.29 21: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렇군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9 22: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zinil2님//처음 댓글 달아 주신 것 같군요. 반갑습니다. ^^

    맹꽁서당님//덧붙여 비교적 예전에 생겼던 기록에는, 이에야스가 노부나가에게 죽이고 싶다고 청하자, 노부나가는 [いかようにも存分次第 - 맘대로 하셔]라고 했다고 합니다. 또한 노부야스가 반역의 생각을 가졌다고 하는 기록이 있으며, 그 기록들에서는 이에야스 쪽에서 청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노부야스를 오카자키에서 쫓아낼 때는, 오카자키에서 일하던 소위 오카자키 파들에게 등성을 금지시키고, 직접 끌고온 하마마츠의 하타모토들로 성을 점거했다고 하더군요.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6.30 00: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래도 이 마쓰다이라 노부야스는 제법 당대엔 인기가 있었던 듯 싶습니다. 생존설까지 뜨는걸 보면..(;)

    뭐 위키에도 이런 내용이 있긴 하던데 세키가하라에서 노부야스를 떠올리는 이에야스의 모습도 있고 해서 진위가 불분명하다.. 뭐 이런식으로 얘길 하더군요. 여기 관한 괜찮은 원서를 시간날때 한번 찾아보곤 싶지만서리..(요새 이런저런 공부 준비로 바빠서;;)

  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30 08: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카와(오카자키) 사람들만 그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순리대로 라면 노부야스가 쇼우군이었을 테니까요)

    http://ja.wikipedia.org/wiki/%E5%BE%B3%E5%B7%9D%E5%AE%B6%E5%BA%B7%E3%81%AE%E5%BD%B1%E6%AD%A6%E8%80%85%E8%AA%AC

    참고로 이 이에야스 영무자 설의 노부야스 항목의 묘소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더군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mansukizzang BlogIcon 본다충승 2008.07.01 15: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쌍한 노부타다... 괜히 노부야스랑 비교 되고... 그래도 아직까지는 노부나가가 죽였다는 설이 인정받고 있겠죠? ㅎ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7.02 0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노부타다의 굴욕?? ^^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런 것 같습니다.
    가끔가다 그런 것에 대해 다룬 책들이 보이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는 대세가 노부나가 명령설인 것 같습니다.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xjapan1231 BlogIcon 나오 2008.09.28 17: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카자키슈와 하마마츠슈 간의 권력다툼의 희생양이라고 하죠 노부야스는.. 그리고 지금은 노부야스에 대한 모반(타케다와의 내통)사실자체도 그리 신빙성이 없고 말이죠.. 무엇보다 고도쿠가 노부나가에게 보낸 12조항 자체도...ㅡㅡ;;;;;;;;;;;;; 여튼 너구리놈 잔악하기 그지없는게 나중에 이것또한 신군전설의 하나로 그 죄를 모두 노부나가와 사카이에게 뒤집어씌운..ㅡㅡ;;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9.29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만약 토쿠가와 가문이 천하를 잡지 않았다면 지금과는 다른 이야기가 전해 내려왔을 것 같습니다.
    (전 노부나가가 노부야스를 죽인 이유 중에 가장 웃긴 것이....노부타다보다 노부야스가 뛰어나서 죽이려고 했다는 거 더군요)

  10. 골룸 2009.10.28 1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글 잘 봤습니다
    하이텔 전클이라... 추억의 이름이네요...

이 게시판에 올려도 괜찮은지 모르습겠니다만...

디시의 공지와 비슷한 것인가 보더군요.

센고쿠(戦国) 시대 게시판의 기초 지식

이 정도는 알아 두지 않으면 병진 취급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센고쿠 시대 전반적인 것에 대해.

  • 치안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쿄우토(京都)도 자치조직 같은 것이 있었다).

  • 하지만 역시 다이묘우(大名)끼리의 국경 근처는 위험했다.

  • 영토의 크기보다 중요한 것은 석고(石高). 예를 들면 오와리(尾張)같은 곳은 저렇게 조그맣지만 50만석이 넘는 대국.

  • 1만석X250이 대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병사수. 예를 들어 50만석이면 12500, 100만석이면 25000 정도가 기준

  • 텔레비전도 인터넷도 없던 시대였기에 숫자가 굉장히 엉망. 오케하자마에서 이마가와4만이라던가 미미카와(耳川 오오토모(大友)와 시마즈(島津)의 싸움 역자 주)에서 오오토모 6만이라던가 그런 것은 있을 수 없다.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 .

  • 노부나가는 인망이 있었다.

  • 노부나가는 이외로 좋은 사람.

  • 노부야스(信康 토쿠가와 이에야스(川 家康)의 아들)는 노부나가가 죽인 것이 아니다.

  • 노부나가에게 좋지 않고 이에야스에게 좋은 이야기는 대체로 에도 시대의 창작(아네가와(姉川) 전투, 노부야스죽이기 등)

  • 노부나가와 미츠히데는 사이가 좋다.

  • 아무 때나 방화를 일삼는 것은 아니다(미노(美濃) 공략때도 산 전체를 불태우면 을 취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 노부나가는 아스퍼거 증후군

  • 삼단철포 같은 것은 없다.

  • 낙시낙좌()는 노부나가의 오리지널이 아닌 롯카쿠(六角)의 것을 베낀 것. 참고로 이마가와 우지자네(今川 氏)도 했던 것.

  • 오케하자마는 어쩌다 이겼다는 것이 대세.

  • 하지만 그걸로 노부나가를 과소평가하면 이노우 전투( 노부나가와 동생 노부유키(信行)간의 싸움 700 vs. 1700 – 역자 주), 모리베 전투(森部 마에다 토시이에(前田 利家)목 사냥꾼 아다치(頸取足立)’를 쓰러뜨렸다는 전투. 3000 vs. 6000(사이토우()) – 역자 주), 텐노우지 전투(天王寺 텐노우지 요새(7000)을구원하는 노부나가 3000 vs 혼간지 15000의 전투. 노부나가는 선두에 서서 돌격했다고 한다 역자 주) 등 적은 수로 대군을 물리친 전투가 몇 번 더 있었기에 오케하자마에서 어쩌다가 이겼다고 하여도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

  • 미카타가하라 전투 최대의 피해자.

  • 신겐 정도는 여유롭게 쓰러뜨린다.

토요토미노 히데요시(豊臣 秀吉) .

  • 백성에게 사랑 받은 타이코우(太閤) 어르신이라는 것은 거짓말.

  • 혼노우(本能)()의 변시점에서 히데요시의 위치는 가신 필두인 시바타(柴田), 2위인 아케치(明智), 여러 좋은 대우를 받고 있던 니와(丹羽) 아래인 4번째 정도.

  • 가난한 농민 출신이 아니라 부잣집 출신(이었다는 설도 있다)

  • 잔혹한 행위를 많이 했다.

  • 노부나가가 죽은 다음부터 노부나가 뒤따마로 없던 것도 만들어서 퍼트린 것을 보면 정말로 성격이 나쁘다.

  • 알려진 만큼 타케나카(竹中)나 쿠로타()의 도움을 받지 않았지만 히데나가(秀長)의 힘 없이 천하인 히데요시는 될 수 없었다.

  • 토요토미 가문 멸망의 원인은 전부 이 녀석.

  • 아기씨(精子)가 없다.

  • 히데요리()는 아마 이 녀석의 아이가 아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 편.

  • 자기한테 안 좋은 것은 전부 노부나가에게 덮어 씌었다(아들 죽이기, 미카타가하라에서 3000밖에 병사를 보내 주지 않았다 등)

  • 아네카와에서의 분투 같은 것은 없었다 - 라기보다 아네카와 전투 자체가 알려진 만큼 대규모 전투는 아니었다.

  • 미카타가하라 전투는 이에야스의 미스라기 보다 거기서 물러난다면 코쿠진()들이 자신을 따르지 않게 되기에 어쩔 수 없이 출진. 별로 신겐이 굉장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다……는 것이 타당.

  • 실은 알려진 만큼 괴로운 인질 시대 같은 것은 없었다(요시모토에게는 굉장한 기대를 받았고, 타이겐 셋사이(太原 雪)에게 교육을 맡길 정도였다)

타케다 신겐 편.

  • 센고쿠 시대에서 가장 과대평가 받고 있는 과대사천왕(타케다, 우에스기, 시마즈, 다테, 쵸우소카베(長宗我部) 5명이 있지만 단어 가지로 따져서는 안 된다)의 필두.

  • 항상 우세한 상태에서 싸움을 걸기에 소수의 군사로 대군을 물리친 전투가 없다.

  • 그런 주제에 몇 번이나 졌던 것을 보면 이 녀석 역시 전쟁 하수일 것이다.

  • 노부토라(信虎) 이상으로 세금 폭탄을 먹였다.

  • 영민들에게 미움 받았다.

  • 기껏해야 코쿠진() 연합의 맹주적인 존재이기에 조직 만들기는 안 된다.

  • 사람을 쓰는 것이 정말로 뛰어난지 어떤지는 미묘.

  • 노부나가가 두려워하거나 할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

  • 자기보다 격이 떨어지는 인물밖에 이기질 못한다.

  • 오야붕(이마가와 요시모토)에게는 개기질 못한다.

  • 미카타가하라는 3배의 병력 차이가 있었기에 이길 수 있었다. 별로 신겐이 굉장한 것은 아니다.

  • 메뚜기전법(상대의 지역에서 물자를 약탈)과 인신매매로 겨우 버텼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정도.

  • 카와나카지마는 안개 속에서 퇴각하다가 우연 부딪혔을 뿐.

  • 타케다 가문 멸망의 원인은 전부 이 녀석.

  • 상대방이 일부러 동맹을 신청해서 맺었는데도 불구하고 손바닥 뒤집듯이 간단히 동맹을 끊는 것을 보면 너무 멍청이 같아서 옹호해 줄래야 옹호해 줄 수가 없다.

  • 처음부터 카이(甲斐) 22만석을 전부 가지고 있는 등 굉장히 좋은 환경.

  • 처음부터 5000의 병력을 움직일 수 있었기에 굉장히 좋은 환경.

  • 시나노(信濃)에는 다이묘우(大名)가 없는(소규모 호족 밖에 없었다) 굉장히 좋은 환경.

  • 기본적으로 역사 게임이라거나 TV 방송 등에서는 최강 취급을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다테나 시마즈와 그리 차이가 나질 않는다.

우에스기 켄신 편.

  • 실은 여자가아닐까 하는 의견도 있다.
  • 그 이상한 행동도 여자라고 하면 왠지 납득할 수 있는 것이 많다.
  • 메뚜기 전법과 인신매매가 특기

  • 우에스기는 **성을 뺏어 100의 금과 200의 식량을 얻었다 - 라는 게임 같은 것을 실제로 한 무서운 다이묘우(大名).

  • 10만의 대군으로 호우죠우()를 공격하지만 니노마루()도 없었던 오다와라(小田原)()을 낙성시키지 못했다.

  • 영토 확장 욕심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영토 확장을 할 수 없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마지막 즈음은 북새통에 호쿠리쿠(北陸)의 대부분을 손에 넣어 100만석의 거대 다이묘우(大大名).

  • 오다 가문과의 국력 차이를 보면 무슨 짓을 해도 절대 이길 수 없다.

  • 테토리가와 전투(手取川)는 노부나가를 쓰러뜨린 것이 아니라, 히데요시가 멋대로 전선 이탈하여 혼란에 빠진 카츠이에(勝家)를 쓰러뜨린 것뿐.

  • 우에스기측이 주장하는 만큼 큰 전투는 아니다.

  • 라기보다 실제로 있었는지 어떤지 조차도 미묘(있었다고 하여도 그걸로 우에스기 켄신의 명성을 높일 수 있는 듯한 큰 전투는 아니다)

호우죠우 가문 편.

  • 호우죠우라는 성을 쓰기 시작한 것은 우지츠나(氏綱) 때부터라고 한다.
  • 알려진 소우운(早雲) 실적의 대부분은 우지츠나가 한 것.

  • 우지야스가 한 카와고에 전투(河越 - 11000으로 60000의 군세를 물리친 전투)는 여러 설이 있긴 하지만 우에스기와 호우죠우의 밸런스를 보는 한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전투로 센고쿠 시대에 기리 남을 멋진 전투.

  • 우지야스, 츠나시게(綱成), 우지시게, 우지마사 등 농성만 하였다.

  • 명군(名君)이 비교적 많은 핏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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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deadsushi BlogIcon 리더쉽 2008.05.22 23: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잘못 아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저는 워낙 에치고가 폭설이 내리는 지역인데다가 코즈케와 접경의 산지때문에 겨울에 길이 끊겨서 돌아가는 것이고 그 결과 겨울에는 무슨짓을해도 나가오가의 원군이 오지 않기 때문에 관동피관 현상이 나타났다고 생각합니다.아닐려나요? ^^;;;

  3.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5.23 10: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관동피관… 주제에서는 벗어나는 얘기지만 하나 해보겠습니다.
    춘추 초기에 정(鄭)·제(齊)·노(魯) 3국이 연합하여 허(許/&amp;#37158;)나라를 공격했습니다. 허는 남작국으로 작위도 낮고 성도 견고하지 못해 이 셋 중 하나만 가도 제압할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데 셋이나 갔으니 연합군은 성이 금방 함락되리라 여겼을 겁니다. 그러나 원군으로 나온 노, 제의 군사는 거의 팔짱이나 끼고 있어서 결과적으로 정군만 X빠지게 싸워 겨우 허를 함몰할 수 있었습니다.

    압도적인 상황에서도 이러한데 오다와라라면…

  4.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8.05.23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요토미노 히데요시는 프로이스와 조선쪽 기록에 따르면 악마(;;)급이긴 하지만, 일본쪽에서도 썩 평이 안좋긴 안좋나보군요. (엔도 슈사쿠도 상당히 깠던 걸 보면.. 참; 서민이 서민일적 생각 못한다랄까..)

  5. Favicon of http://hyunby1986.tistory.com/ BlogIcon 턴오버 2008.05.24 01: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게 모두 사실이라면 충격인데요...;;

  6.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4 08: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사본론님//저 항목들 중에서 특수 상황의 병력 동원, 과대 평가 된 부분이 있는 신겐, 켄신 여성설을 뺀 것이 어째서 반 '밖에' 안 된다고 하시는지요? 서로 얼굴 보면서 하는 것이 아니니 될 수 있으면 공격적인 어투는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리더쉽님//아뇨. 저도 모릅니다. 그냥 무예가 뛰어난 자였다는 것 정도만이죠.
    (토시이에도 한 무예 한다는 데 그도 고생시킬 정도면 정말 굉장했구나~ 라고 생각할 정도죠)

    고사천사님//칸토우 출병 1560~1574년까지의 12번 칸토우 출병하여 월동한 것은 8번입니다. 혹자는 봄에서 여름 사이에 가장 많은 아사자가 나오는 당시 상황에서 칸토우 출병은 그런 것을 피하기 위해서 행해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신사본론님//좋은 지식 감사드립니다. 중국 전국 시대는 관심이 있어서 책은 몇 권 사다 놓고서는 쌓기만 해서..

    다메엣찌님//평가라는 것은 남긴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기록을 남겨놓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기록을 남겨 놓는 사람도 있겠죠. 다만 미증유의 해외 원정을 치루었다 보니 아무래도 세금같은 것은 많이 거두었고, 검지를 하여 새롭게 세금을 거 부과하였을 테니 밑바닥 사람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을 것 같습니다.

    턴오버님//모두 사실일지 어떨지는 모르겠습니다. ^^ 다만 제가 생각하는 것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것입죠.

  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4 0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네가와 전투가 그렇게 까지 큰전투가 아니였단 말인가요? 흠...

  8.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8.05.24 10: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단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굉장히 참신하고 재미있는 글이네요.
    후타챤이 일본의 디씨라고 하던데 정말 재미있네요. ㅎㅎ

  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4 10: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허공님//확실치 않은 점이 많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누군지 기억 안나니 물어보시면 곤란...)은 이에야스가 도와 주지 못해서 타케다 카츠요리에게 넘어간 토오토우미의 타카텐진 성의 오가사와라 씨 대활약을 지우는 과정(신군께서 수하를 버리면 좀 그렇기에)에서 여러 정치적인 고려(노부나가 병진인데 이에야스가 도와서 이길 수 있었다, 오가사와라가 활약한 것이 아닌 혼다 타다카츠다. 카스가노츠보네로 연결된 이나바 씨의 활약이 필요하다, 2대 쇼우군 히데타다의 부인이 아자이 씨다 등)가 들어갔기 때문이라고도 하더군요 -&gt; 요것도 하나의 설입니다. 참고만 해 주시길..

    shotokanfist님//원문은 코에이의 신장의 야망에서 저평가 혹은 고평가 받은 인물들의 수치에 대해 따지다가 나온 글인지라...
    http://www26.atwiki.jp/sengokujidai/pages/4.html?PHPSESSID=9900ddbeba1dd633a6d2b9103303ce40&amp;flag_mobilex=1
    원문은 이곳입니다.

  10.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8.05.24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장의 야망. 저도 해본 적이 있는 게임입니다. 삼국지 시리즈도 좋아하고요.
    최근판이 혁신이던가요... 그거 하다가 관위 받는게 힘들어서 좀 좌절했었죠.



    그건 그렇고, 며칠 전에 사무실에서 이 글 읽으면서 혼자 낄낄거렸네요. ㅎㅎ

  11.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5.24 1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해지랑님| 거기에다 “몇몇”까지 더해서 반 정도라는 것이었습니다.
    “공격적인 표현”에 대해선 사과드립니다. 글 써 놓고 나서 서버로 데이터 보내기 전에 적어도 한 번씩은 생각해 봐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하다 보니까 미처 배려가 부족했습니다.

  12.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5.24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런데 원문을 보니까 ?가 있군요. 무슨 뜻일까요?

  13.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5 07: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shotokanfist님//그런가요? 보는 방향의 문제이지 비웃으실 것 까지는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만...

    신사본론님//약간 미묘한 것 까지 포함해서 10개 정도라 치고 10/66이 어째서 반이 되는지 알 수가 없군요.

    배려라... 현실 사회에서는 자기보다 하급자에게라도 배려라는 말은 직접 쓰지 않습니다. 신사본론님이 저한테 배려라는 말을 쓰실 정도로 굉장한 인물이라고는 생각치 않습니다.

    ?는 아직 그 항목이 생성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14. Favicon of http://blog.naver.com/shotokanfist BlogIcon shotokanfist 2008.05.25 09: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웃은게 아니라 센스가 좋고 재미있어서 웃은건데요. ㅎㅎ
    2ch랑 비슷한 디씨인사이드를 출입하는 처지라, 이런 센스있는 글을 좋아합니다.
    제 리플에 오해의 소지가 있었나 보네요...

  15.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5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그렇습니까. 죄송합니다. 제가 오해를 했군요. ^^;

  16. Favicon of http://blog.naver.com/lwk1988 BlogIcon 신사본론 2008.05.25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발해지랑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셔서 제가 동감하지 않는 항목을 다시 세 봤습니다. 20여개군요. 이 정도면 1/3이지, 반은 아닙니다. 제가 대강 셌었군요. 죄송합니다.
    배려란 말이 그렇습니까? 만약 맞다면 그것은 저의 착오입니다.

  17.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5.25 1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신사본론님의 생각을 말씀하시는 것이었군요. 제가 늘어놓은 것을 그대로 따라서 하시면서 반문하시길레 제 생각을 넘겨짚으시면서 이야기를 하시나 했습니다. 제가 오해했군요. 실례했습니다.

    세상에는 어쨌든 맞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신사본론님과 제가 그런가 보군요. 담부터는 댓글 달아주시지 말아 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18. Favicon of http://blog.naver.com/taebong0721 BlogIcon 태봉이 2008.06.21 20: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악하악.. 형.. 나의 켄신은 그렇지 않다능...

  19.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8.06.21 22: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뭐 디씨나 투챤이나 안 까이는 존재가 없다능...
    (거긴 서울대에 이어 아이비리그에 유학 간 이순신 장군이라도 까이는 곳이라서..)

  20. 바우와우 2015.02.04 01: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21. 이승희 2016.07.16 03:2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출처: http://ja.wikipedia.org/wiki/李明博

이 명박(1941년 12월 19일 ~ )은, 한국의 정치가. 전 서울 시장. 신장 173Cm, 체중 70Kg. 혈액형은 B형. 식민지 시대에 있던 창시개명 시의 일본명은 츠키야마 아키히로(月山 明博)(~1945년까지). 호는 일송(一松). 별명은 [컴도저(컴퓨터 + 불도저)], [따스한 남자].

현대 건설 사장, 국회의원(한나라당) 등 요직을 역임했다. 2002년에 서울 시장이 되어, 20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설득하여 청계천 복원 공사를 실시했다. 또하 한국 대통령 선거(2007년 말)의 전초전인 한나라당 예비선거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승리하여, 대통령 선거의 당 공인 후보가 되었다. 대통령 선거에 있어서의 각종 여론 조사에서는 모두 1위, 2위이다.

인물상

-태어났을 때는 굉장히 가난하여, 중학교 시대에는 영양 실조로 쓰러진 적도 있지만, 졸업할 때의 성적은 전교에서 2위였다고 한다(가장 낮았을 때라도 3위였다). 집이 가난하여 인문계 고교에 진할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야간 상고를 다녔다. 참고로 성적은 입학부터 졸업까지 매번 학년 1위였다.

-병역은 입대 후에 기관지 확장증에 의해 제대가 되었다.

-존경하는 인물은 안창호, 간디.

-정계에 입문하기 이전은 경제인으로 유명하여, 중소기업에 지나지 않았던 현대 건설에서 정주영의 가르침 속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36살에 사장에 취임하여 한국 톱 기업으로 상승시켰다. [현대의 한국을 창조한 50인]에 선정되는 등, 한국에서 샐러리맨 신화의 대표적인 인물로 인식되고 있다.

-별명은 [불도저]. 건설업 출신이라는 것도 있어 개발 정책이 특기로, 시장 시대에는 청계 고가도로의 철거와 청계천 복원을 실현했다. 또한 차기 대통령 선거에는 한강과 낙동강을 잇는 [한반도 대운하(내륙 운하) 프로젝트] 구상을 주요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박정희 정권 시, 한일기본조약 체계의 사전 단계인 한일 회담 반대 투쟁(6.3사태)를 고려 대학 학생회장으로 주도하여, 체포되었다.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복역 6개월)의 판결을 받았으며, 이 일로 인하여 박정희의 딸이며, 같은 한나라당 차기 대통령 선거 후보 라이벌이었던 박근혜에게 적개심을 품고 있다고도 한다(출전이 필요)

-한국 정치가가 대부분 그렇듯, 시국에 맞춘 반일적 성향을 때때로 보인다. 예를 들면 일제 강점기 시대에 세워진 현 서울 시청을 태극기로 덮는 이벤트를 개최하거나, 일본 역사 왜곡 교과서 채택 저지를 위해 기부금 1억 3200만원을 모은 것이나, 서울 남산에 세워진 유스 호스텔에 일본인 수학 여행을 유치하여 독도 영유권이나 일제의 잔혹성에 대해서 학습할 기회를 만드는 계획이나, “이시하라 신타로우(동경 도지사)는 4류, 5류인 정치인”이라고 발언, “경제 대국인 일본의 전후 처리는 독일의 그것과 비교하면 구두쇠” 등의 주장이나 활동이 있다.

그러는 한 편 2006년 1월에 세계 경제 포럼에서는 “일부 아시아 정치 지도자들은 과거의 역사에 묶여, 국가 간의 긴장을 높여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며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는 발언을 하여, 정부 여당인 열린 우리당에게 [친일 발언]이라고 비판당하거나, 같은 해 11월에 일본에 와서, 아베 신조우(당시)와 회담했을 때에는 “한국 국민의 3대 현안(역사, 독도, 야스쿠니 신사)을 미래지향적인 해결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부탁하고 싶다”고 직접적인 표현을 피하는 발언을 하는 등, 안과 밖에서의 언동을 나눠서 사용한다.

또한 현대 건설 시대의 경험으로 인하여, 일본의 재계에 인맥이 있다고도 한다([사피오[각주:1]] 2007년 1월 4일판 “세계의 [반일수괴 vs 친일거인(世界の’反日首魁vs親日巨人’)]"에서

-일본어와 영어가 뛰어나다.

-현재 국회 부이장인 이상득은 실제 형이다.

-출생지는 경상북도 포항이라고 했지만, 후에 자서전에서 일본의 오오사카라고 밝혔다. 또한 당시 부친이 [츠키야마(月山)]이라는 성을 창씨하여, 본인도 그 성을 사용했었다고 형인 이상득이 말하고 있다.

약력

* 1941년 – 오오사카부 나카카와치군 카미촌(현 오오사카시 히라노구(大阪市平野区)에서 출생

* 1961년 – 고려 대학교 입학

* 1965년 – 현대 건설 입사

* 1977년 – 현대 건설 사장 취임

* 1988년 – 현대 건설 회장 취임

* 1992년 – 제 14대 국회의원 당선(민자당, 전국구)

* 1996년 – 제 15대 국회의원 당선(신한국당, 서울 종로구)

* 1998년 – 제 15대 국회의원 사임

* 2002년 – 제 32대 서울특별시 시장 취임

* 2006년 – 서울 특별시 시장 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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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자가 아는 일본인들은 대부분 이명박 전 서울 시장이 당선되길 바라고 있더군.
  1. 일본 보수 잡지, 세계의 반일에 대해서 부정적인 시전을 가지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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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blog.naver.com/dameh BlogIcon 다메엣찌 2007.11.30 1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역시 오사카 출신이라 그려련가요(ㅁㅎ..)

    고베 출신인 제 할머니도 이명박 당선을 원하시던데..(~~)

  2. Favicon of http://blog.naver.com/valhae0810 BlogIcon 발해지랑 2007.11.30 1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본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노무현 대통령을 굉~~~~~장히 싫어하더군요.
    일본 사람들이 한국 정치 상황을 아는 것도 아니고, 노무현 대통령과 반대당이라는 것 만으로,
    일본 사람들은 이 명박 전 서울 시장이 되었으면 하더군요.
    초반에 양국의 미래를 위해서 독도 문제나 과거의 일을 언급하지 않겠다던 노무현 대통령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하지 못한 채...

    옛 말 틀린 거도 많지만, 이 말은 맞더군요.
    &quot;**와 소인은 풀어주면 기어오르고, 엄하게 하면 삐진다&quot;..라는 공자 어르신의 말씀이...
    (**는 아직 표본 조사가 덜 되어서 뭐라 말하긴 그렇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