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40초 즈음, 작은 배를 타고 접근하여 적함에 올라타 공격하는 것은 아마 제2차 쵸우슈우 정벌[第二次幕長戦争 혹은 사경전쟁[四境戦争] 전쟁 시 '오오시마 전투(大島口の戦い)'인 듯.
1866년 6월 7일 막부는 '이요 마츠야마 번[伊予松山藩]'과 막부육군[幕府陸軍], 막부해군[幕府海軍]으로 오오시마를 점령합니다. 그 중 막부육군은 비교적 최신 병기를 갖춘 정예부대라 할 수 있겠습니다...만 구성원이 대부분 비무사 계통이었는지라 조금 막장이었다고 합니다. 섬 점령을 곧바로 승리로 여겨 온 섬을 약탈하고 다녔다고 하더군요. 하긴 이 쵸우슈우 정벌에 바쿠후는 10만을 동원하였고 쵸우슈우는 많이 잡아야 4000명 정도. 거의 승리한 거나 마찬가지인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빈틈을 눈치챈 쵸우슈우 정부는 타카스기 신사쿠[高杉 晋作]에게 명령, 신사쿠는 우선 바쿠후 해군을 몰아낼 생각으로 작전을 짭니다. 6월 13일 새벽에 보초도 제대로 세우지 않고 방심한 바쿠후의 함대 사이에 들어가 지근거리에서 대포를 쏘아댄 것입죠. 실제로 저렇게 작은 배를 타고 공격해 들어가는 일은 없었던 듯 합니다.
3분 즈음. 타카스기 신사쿠가 각혈하는 신.배경을 보면 2분 40초의 장면의 연속인 듯 싶지만, 신사쿠가 각혈했다면 큐우슈우[九州] 방면 전투인 고쿠라 방면 전쟁[小倉口の戦い]인 것 같습니다.
이 고쿠라 전투에서 이 장면과 비슷한 전투는 7월 3일에 벌어진 '다이리 전투[
大里の戦い]'인듯. 무엇보다 밤중에 벌어졌으며 신사쿠가 있는 곳에서의 포화 등을 보건대, 쵸우슈우 해군이 막부 해군을
시모노세키[下関] 아래 쪽에 있는 히코시마[彦島]에 있는 포대로 유인한 전투로 보입니다. 서로 그다지 피해를 주거나 입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타카스기는 이 코쿠라 전쟁 내내 골골대며 작전은 대부분 그가 누워있는 곳에서 세워졌다고 합니다. 조금 나아지면 전장에 나가는 식으로 했지만, 14대 쇼우군 이에모치[家茂]의 죽음이 알려지자 쿠마모토 번[熊本藩] 등 다른 번이 자기들 번으로 퇴각하고 코쿠라 번 혼자만 싸우게 되자, 코너로 몰린 코쿠라 번사들이 게릴라 활동을 위해 8월 1일 자신들의 성 코쿠라 성[小倉城]를 불태우게 됩니다. 그것으로 몸과 정신을 죄어왔던 긴장이 끈이 풀어졌는지 피를 토하고 다음 해 4월 14일 죽습니다....즉 7월 3일 시점에서는 피를 토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