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일 오후 2시 즈음부터 약 2시간 반 동안, 나가노현[長野県] 가루이자와[軽井沢]에서 북한에 관한 일미한 협의가 실시되었습니다. 회담에는 후나코시 타케히로[船越健裕] 아시아대양주 국장, 성 김 미국 대북담당 특별대표 및 김건 한국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이 참석했습니다. 또 같은 날 삼자는 실무 만찬을 행했습니다. 후나코시 국장은 성 김 특별대표 및 김 본부장과 내일 21일에 걸쳐 각각 의견을 교환할 예정입니다.

  1. 이러한 기회를 통해 삼자는 저번 주 12일 ICBM급 탄도미사일 발사와 19일 2발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포함한 북한의 전례 없는 빈도와 태도의 탄도미사일 발사를 강력히 비난하고, 이러한 도발 행위는 지역 안보에 중대하고도 임박한 위협이자 국제사회에 대한 명백하고 심각한 도전이라는 인식을 재차 공유했습니다.

  2. 또한 14일 일미한 외무장관 회담에서 확인된 바와 같이, 삼자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따른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일미한 안보보장협력을 포함한 지역 억지력, 대처력 강화, 안보리 대응 및 동지국과의 협력을 포함한 국제연계, 사이버 분야에서의 대응 등에 대해 계속해서 일미, 일한, 미일한에서 긴밀히 연계할 것임을 재확인했습니다. 북한과의 대화의 길이 열리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인식을 공유하고, 이 관점으로도 미일한이 한층 긴밀히 연계해 나갈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3. 또한 후나코시 국장으로부터 성김 특별대표 및 김 본부장에게 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지속적인 이해와 협조를 구하며 지지를 얻었습니다.

  4. 삼자는 각각 강화된 이개국간 관계를 토대로 미일한 공조를 한층 더 높은 목표로 끌어올리기 위해 미국 제안의 일미한 정상회의의 기회를 포함하여 삼국 간에 계속 긴밀히 연계해 나가기로 하는데 일치했습니다.

* 일본 외무성의 글이기에 '한미일'이 아닌 일본이 쓰는 '일미한'으로 하였다.

 

출처 : https://www.mofa.go.jp/mofaj/press/release/press1_001514.html

 

北朝鮮に関する日米韓協議(結果)

 7月20日、午後2時頃から約2時間半、長野県軽井沢において、北朝鮮に関する日米韓協議が実施されました。同協議には、船越健裕アジア大洋州局長、ソン・キム米国北朝鮮担当特別代表及

www.mofa.go.jp

 

출처 : https://jbpress.ismedia.jp/articles/-/68398

저자 : JBpress - 곽문완

 

北朝鮮軍の軋轢で始まった主席宮攻防訓練の激しすぎる結末 訓練で死亡者28人、重傷者107人、

北朝鮮軍は冬季と夏季で演習を行う。毎年12月1日から3月末に冬季訓練が、7月1日から9月末に夏季訓練が行われる。こういった定期訓練とは別に特別訓練もある。振り返れば、1992年5月に(1/3)

jbpress.ismedia.jp

북한군은 겨울과 여름에 각각 훈련을 한다. 매년 12월 1일부터 3월말까지 겨울훈련이, 7월1일부터 9월말까지 여름훈련이 실시된다. 이러한 정기훈련과는 별도로 특별훈련도 있다. 되돌아보니 1992년 5월에 인민무력부와 호위사령부간에 죽음도 불사하는 "주석궁 공방 훈련"이 실시되었다. 이것은 어떤 훈련이었을까?

 

 1992년 5월. 김일성이 주석궁 내의 저택정원에서 오진우 인민무력부장, 리을설 호위사령관과 티타임을 가지고 있었다. 오진우 부장이 인민무력부의 공격능력을 자랑하자, 리을설 사령관은 호위사령부의 수비능력을 자랑했다.

 

 둘의 자랑을 듣고 있던 김일성이 '그럼 한번 붙어보라'고 농담삼아 말하자, 오진우 부장과 리을설 사령관은 이것을 농담이 아닌 진담으로 받아들였다. 김일성의 반쯤 농담이 인민무력부와 호위사령부의 죽음도 불사하는 "주석궁 공방 훈련"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김일성이 정한 목표물은 주석궁이었다. 인민무력부의 군인이 한사람이라도 주석궁에 침입하여 훈련판정단이 발급한 빨간 종이를 건물벽에 붙이면 인민무력부의 승리, 호위사령부가 침입을 막으면 호위사령부의 승리였다. 판정기간은 30일로 실탄을 제외한 모든 것이 가능한 훈련이었다.

 

 오진우 부장과 리을설 사령관은 김일성의 전투훈련 판정을 놓고 제대로 붙어보고자 했다.

 

 오진우 부장은 인민무력부의 한국침입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부대를 모아 침입조를 짰다. 한편 리을설 사령관은 호위사령부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주석궁을 수비했다. "인민무력부 공격침입조"는 어떠한 수단을 써서라도 1개월 이내에 주석궁에 침입하여 빨간 종이를 붙이는 것에 목숨을 걸었고, 그에 대비하여 호위사령부 역시 침입저지에 목숨을 걸었다. 

 

차례로 목숨을 잃은 주석궁 침입조의 면면들

 

 인민무력부와 호위사령부가 훈련에 목숨을 건 승부에 도전한 이유에는 역사적인 라이벌 관계에 있었다. 인민무력부는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이고, 호위사령부는 쿠데타나 반란 등을 진압하는 부대이다. 그러나 호위사령부는 수뇌부를 호위하고 있기에 인민무력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우대를 받고 있었다. 

 

 군복부터 달랐고, 물자보급에서도 훨씬 우대받았다.

 

 인민무력부의 병력은 120만명이고 호위사령부는 그 인민무력부의 11%에 지나지 않는 13만명이지만, 화력 밀도는 호위사령부가 북한군 전체의 40%에 달했다. 거기에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호위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기에 긍지가 높았다.

 

 그에 대하여 인민무력부의 호위사령부에 대한 반감이나 열등감은 위험하다고 할 수준까지 달해있었다. 인민무력부의 군인들은 김일성 주석 앞에서 전투력을 과시하여 호위사령부의 콧대를 꺾어 놓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주석궁으로의 침입은 세 방향에서 행해졌다. 첫번째는 주석궁에 전력을 공급하는 고압송전선을 이용하여 침입하는 작전이었다.

 

 송전선의 전력을 차단하여 3인1조로 구성된 6명의 침입조가 반대측에 있는 철탑에서 고압송전선을 탔다. 등에 단 수소풍선으로 중심을 잡아 침입해서는 주석궁의 지붕에 착지하여 빨간 종이를 붙이는 작전이었다.

 

 그리고 침입조가 한반 중에 철탑에 올라가 침입을 시도했지만 차단되었던 고압송전선의 전력이 복구되자 감전된 6명은 땅에 떨어져 죽었다.

 

공포의 "주석궁 공방 훈련" 매뉴얼

 

 두번째는 대동강에서의 침입이었다. 주석궁은 평양 중심을 가로지르는 대동강에 인접하였기에 수중에서 침입이 가능했다.

 

 그렇기에 북한 호위사령부는 주석궁이 위치하는 수면 아래에 적의 침입을 차단하는 고압전기선을 깔아놓았다. 호위사령부 예하 1호위대 제3중대 군인들은 정기점검을 핑계로 수중고압선에 전기를 넣어 감전사하여 물에 뜬 생선으로 잔치를 열 때도 있었다.

 

 그 대동강에서 3조9인의 침입조가 잠수복을 입고 침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대동강 가까이서 보초업무를 서고 있던 호위사령부의 군인이 실탄 이외에 무엇으든 사용가능하다는 "주석궁 공방 훈련"의 매뉴얼에 따라 수중의 고압전기선에 전기를 흘려넣었다.

 

 9명의 수중침입조는 생선과 함께 물에 떴다. 곧바로 구급차로 병원으로 운반했지만 전원이 즉사였다.

 

 세번째는 터널을 이용한 침입이었다. 주석궁에서 1.5km 떨어진 곳에서부터 인민무력부의 공작부대가 터널을 파기 시작했다. 침입목적으로 터널을 팠지만 주변도로나 건물에 균열이 생겨나 불만이 속출했다. 터널을 이용한 침입도 실패했다.

 

 이것들 외에도 주석궁에 출입하는 차의 아래에 붙어 침입을 시도했지만 군의 수색견에 물려 부상당한 병사나 호위사령부의 차를 탈취하여 침입을 시도한 병사 등, 훈련개시부터 2주 동안 28명이 사망, 중상자 107명, 경상자 322명이 발생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주석궁 공방 훈련"이 중지되었다. 이 이상 계속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알 수 없다고 우려한 김일성이 훈련의 중지를 선언한 것이다. 죽음을 불사한 "주석궁 공방 훈련"은 수백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키고 승패를 결정짓지 못하고 끝났다.

 

 인민무력부와 호위사령부의 오랜 갈등과 김일성 앞에서 전투력을 평가받는다는 것을 명예라 생각하는 북한군 군인의 세뇌가 낳은 참극이었다. 이러한 훈련은 김정은 시대인 지금도 행해지고 있을지 모른다. 많은 북한의 젊은이들이 10년 이상의 청춘기를 군에 바치고, 정권자들의 장난에 목숨을 바치고 있는 현실이 씁쓸하다.

출처 : http://www.mofa.go.jp/mofaj/gaiko/page23_000044.html?show=pc

이 글은 2013년 6월 17~18일 영국 북아일랜드 에른 호수에서 행해진 G8 서밋의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서 언급된 ‘오픈 데이터 헌장’을 해석한 것이다.




세계는 데이터나 정보를 이용한 기술이나 사회 미디어에 의해 촉진된 국제적인 움직임의 가속을 눈 앞에서 보고 있다. 이는 보다 설명가능하며, 효율적이고 책임이 동반된 실효적인 행정이나 비즈니스를 구축하고,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커다란 가능성을 가져다 준다.

오픈 데이터는, 이러한 세계적인 움직임의 중심에 있다.
데이터로의 접속은 인간이나 조직의 생활을 개선하며, 국내 및 국가간 정보의 흐름을 개선하기 위한 시점이나 혁신을 진화시켜 간다. 정부 및 비즈니스는 폭 넓은 범위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긴 하지만, 반드시 사람들이 이용하기 쉬운 형태로 공유되어 있진 않다.

이는 잃어버렸던 기회이다.
사람들은 정보나 서비스를 편리한 디지털로 가질 수 있길 기대하고 있으며, 정부의 정보 또한 그런 것 중에 하나다. 또한 오픈 데이터는 자국의 천연자원이 어떻게 사용되며, 자원사업의 수익이 사용되어지고, 토지가 어떻게 거래되며 또한 이용되고 있는지 등의 인식을 향상시킨다. 이런 것들이 책임이 의무나 안정된 행정을 촉진시키며, 사람들의 논의를 촉진시키고, 정부 비리에 대한 투쟁을 지원한다. 또한 G8의 개발원조에 대한 투명성 있는 데이터는 책임이라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

정부 데이터로의 접속을 제공하는 것은 개인, 미디어, 시민사회 및 비즈니스계에 보건, 교육, 안전, 환경보호나 행정 등 공공서비스를 보다 좋게 행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된다. 오픈 데이터는 이하에 따라 이런 것들을 행할 수 있다.

  • 세금이나 공금 사용의 용도를 게시함으로서, 보다 효율적인 사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
  • 사람들이 서비스나 그 수준에 관해서 상세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다.

무료로 된 정부 데이터는 사람들이 보다 쾌적한 현대생활을 보내기 위한 수단이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사용될 수 있으며, 결국에는 민간부분에서의 개혁을 위한 촉매가 되어, 기존의 시장이나 비즈니스 및 고용 창출을 지원한다. 우리들은 오픈 데이터가 기술혁신과 번영을 가능하게 하며, 또한 시민의 요구에 합치된 강고하고 상호보완적인 사회를 구국하기 위한 커다란 가능성을 가진 미개발된 자원이라는 것에 합의한다.

그를 위해 우리들은 이하의 원칙에 합의한다.

  • 원칙적으로 오픈 데이터
  • 질과 양
  •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 행정 개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기술혁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우리들은 각각 자국의 정치적, 법적 틀 안에서 행하면서도, 본보기나 국내 행동계획에 설정된 시간축에 따라, 이러한 원칙을 이행해 간다. G8각국은 연말까지 이 원칙을 이행하기 위한 활동계획을 책정하여, 2014년 다음 회담에서 진행평가를 행한다.

우리들은 다른 국가 및 다자간협의[각주:1]에도 이 헌장의 검토를 호소한다.

원칙 1 : 원칙으로서의 오픈 데이터

  • 데이터에 따라서는 공개할 수 없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한편, 이 헌장에 제시되어 있듯이 정부의 모든 데이터가 원칙적으로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를 양성한다.

원칙 2 : 질과 양

  • 시기적절하게 포괄적이고 정확한 질 높은 오픈 데이터를 공개한다.
  • 데이터의 정보는 다른 언어들로 번역될 필요는 없지만, 평이하고 명확한 언어로 기술될 수 있도록 한다.
  • 데이터가 장단점이나 분석의 한계 등, 그 특성이 알 수 있도록 설명될 수 있도록 한다.
  • 가능한 빨리 공개한다.

원칙 3 :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 폭 넓은 용도를 위해서 누구나가 입수가능한 오픈적인 형식으로 데이터를 공개한다.[각주:2]
  • 가능한 많은 데이터를 공개한다.

원칙 4 : 행정 개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오픈 데이터의 이익을 전세계의 누구나가 얻을 수 있도록, 기술적 전문성이나 경험을 공유한다.
  • 데이터의 수집, 기준 및 공개 과정에 관한 투명성을 확보한다.

원칙 5 : 기술혁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오픈 데이터의 응용도를 높여, 오픈 데이터에 관련된 사람들을 육성한다.
  • 다음 세대의 데이터 기술혁신가의 능력을 강화한다.


(기술적인 면에 관한 첨부)

파트 1. 본보기

원칙 1 : 원칙으로서의 오픈 데이터

  • 공공에 대한 취지 설명 중 우리들의 오픈 데이터에 관한 노력을 알린다.
  • 자국내의 활동계획을 공개한다.
  • 자국내 포털사이트에 데이터를 공개한다.

원칙 2 : 질과 양

  • 확실하고 일관성 있는 메타데이터(테이터에 관한 속성정보를 설명하는 테이터)의 사용.
  • 최근에 생성된 중요한 메타데이터 해설의 최신화 및 갱신(업데이트).
  • 충분히 구체화된 데이터의 확보.
  • 데이터 사용자에게 의견 청취.

원칙 3 :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다.

  • 편리하고 공개된 포맷으로 데이터를 이용 가능하게 한다.

원칙 4 : 행정 개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민간조직이나 개인과의 연결을 구축한다.
  • 우리들의 데이터 수준에 대해 정보개시한다.
  • 오픈 데이터에 관한 작업을 행하며 얻은 경험을 기록한다.

원칙 5 : 기술혁신을 위한 데이터의 공개

  • 저작권을 존중하면서, 오픈 라이센스를 사용한 데이터의 생성을 지지한다.
  • 데이터를 모아 기계판독할 수 있도록 한다.
  •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여 데이터를 공개한다.
  • 데이터의 혁신적인 사용방법을 촉진한다.


파트 2. 공동 행동

행동 1 : G8 각국내행동계획

  • 자국내 체재에 맞춘 오픈 데이터 헌장의 이행을 위해 각국의 행동계획 발표(2013년 10월).
  • 연 1회 이행보고(2014년 10월 및 2015년)

행동 2 :고부가가치 데이터의 공개

  • 고부가가치 데이터의 이행 및 개발의 촉진.
  • ‘원칙으로서의 오픈 데이터’ 및 ‘질과 양’의 각각의 원칙에 따라, 특정 우선분야의 데이터를 점진적으로 공개하기 위해 힘쓴다.
  • 통계, 지도, 국정선거, 국가예산의 주요한 데이터 세트의 작성(2013년 6월부터).
  • 2013년 12월까지 공통된 데이터 세트의 설정을 행한다.
  • 자국내 체재에 따라, 그 외의 데이터 공개에 관한 자국내 활동계획을 작성한다(2013년 10월).

행동 3 : 메타데이터의 도표화

  • G8의 메타데이터 도표화를 위한 노력을 계속(2013년 6월)


ps; 해당 분야의 문외한이다 보니 관련 용어 등의 차이가 있으나, 하해와 같은 맘으로 이해해 주심 고맙겠습니다.
ps2; '오픈 데이터'를 '정보 공개'로 번역해야 하나 담배 필 동안 고민했습니다만, 검색해보니 '오픈 데이터' 쪽이 많은 듯 하여 '오픈 데이터'란 용어를 썼습니다.

  1. 예를 들어, OPEC이나 ASEM, NATO 등. [본문으로]
  2. 그러니까 .hwp 나 .alz 같은 거 쓰지 말아달란 이야기. [본문으로]

출처 : http://jbpress.ismedia.jp/articles/-/36130
저자 : 코모리 요시히사[古森 義久]

 많은 중국의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일데모가 몹시 거칠어지고 있다. 일본이 센카쿠 제도[尖閣諸島]를 국유화한 일에 대한 중국 국민의 분노라고 한다.

 그러나 공산당 일당독재로 결사의 자유나 집회의 자유가 엄격하게 규제되고 있는 중국에서 일반 국민부터 시작되는 자연발생적인 데모는 있을 수 없다. 정부당국이 묵인 혹은 선동하지 않는 한 다수의 인간이 모이는 것 자체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중국에서의 집회라던가 데모라는 것은 당국에게 있어서 수도꼭지를 조절하는 것과 비슷하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의 양을 조절하는 것처럼, 항의의 움직임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 말이다.



중국의 반미데모와 반일데모의 차이

 필자 자신이 목격한 실례는 1999년 6월 베이징(北京)에서의 반미데모였다. 이 데모는 미군기를 주력으로 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소속 항공기가 당시 유고슬라비아 수도 베오그라드의 중국대사관을 폭격하여 안에 있던 중국인 3명이 사망하고 20명 정도가 중경상을 입은 사건(wike_en)에 대한 중국측의 항의였다. 미국은 당초부터 일관되게 오폭이라 해명하고 있었다.

 사건으로부터 며칠이 지나자, 베이징의 미국대사관 앞으로 매일같이 항의 데모대가 몰려들었다. 당시 산케이 신문[産経新聞] 중국총지국장으로 현지에 머물고 있던 필자도 매일 미국대사관 주변에서 상황을 관찰하였다.

 이 데모는 완전히 정부당국의 관리하에 이루어지고 있었다. 데모 행진을 하며 미국대사관 안으로 돌까지 던지던 당사자들은 모두 베이징 내외에 있던 대학의 학생들이었는데, 전원이 버스로 동원되었다. 대학별로 현장 근처까지 버스로 수송된 남녀학생들은 버스에서 내려 대열을 정돈하고는 대사관 앞까지 행진했다. 도중 길에서 돌을 주워 대사관에 던졌는데, 미국대사관 앞에는 중국인 경찰관들이 줄지어 서서는 보통 크기의 돌을 던지는 것은 묵인했지만 일정이상으로 큰 돌을 던지려고 하면 곧바로 정지시키는 식의 정교한 '데모 관리'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중국 당국이 쓴 시나리오대로 흘러가는 항의데모였던 것이다.

 이번 반일데모도 중국 당국의 그러한 관리하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이 명백하다. 단지 중국의 일반국민들은 원래부터 일본이나 일본인을 굉장히 싫어하는 경향이 높기에, 중국 당국은 '반일'의 움직임을 방치해 놓기만 하여도 알아서 활발해진다. 당국의 관리는 오히려 '언제쯤 막을까?'이다. 반일의 움직임이 폭주하여 '반중국공산당', '반중국정부'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 일반국민이 가진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중국사회에 가득 채우고 있다. 중국 공산당이 오랜 기간 행해온 반일교육이 그 기반을 다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이 센카쿠 문제에 대해 알아서 양보를 하도록 만들기 위해, 중국 내부적으로는 반일표명으로 애국심과 공산당정권 지지를 강화시키기 위해, 중국 당국에 있어서는 이러한 대규모 반일데모의 확산도 효용성이 있는 것이다.


심어진 '희생자의식에서 시작되는 일본에 대한 증오'

 이러한 중국에서의 반일도식에 대해 미국의 중국연구학자가 내셔널리즘의 관점에서 분석하여 발표한 논문이 흥미로웠다. 그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의 반일 움직임의 전체상을 입체적이고 투명하게 볼 수 있다. 확실히 내셔널리즘의 요인은 지금 중국에서의 반일 움직임의 상징적인 현실의 일단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뉴욕타임즈'에 2012년 8월. 즉 전달에 기고된 것이었다. 필자는 오클라호마 대학의 미중 문제연구소 소장인 피터 그리스(wiki_en)교수 이다.

 그리스 교수는 소년기를 중국에서 보냈으며, 1999년에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오하이오 대학, 콜로라도 대학을 거쳐 2006년부터 오클라호마 대학에서 근무하고 있다. 아직 40세 전후의 중국연구학의 신진기예이다. 기고논문은 '어째서 중국은 일본에, 그리고 미국에게도 분노하는 것인가?(Why China Resents Japan, and Us)(newyorktime_en)'라는 제목이다.

 이 논문에 따르면, 이번 반일데모는 내셔널리즘적인 이데올로기가 그 기원이라고 한다. 데모 참가자들이 품고 있는 일본에 대한 반감은 진실이며, 결국 그 원인은 중국당국에 의한 과거의 '희생자의식에서 시작되는 일본에 대한 증오'라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자국민에게 행하는 역사교육으로 인해, 특히 일본에 대한 증오를 키워오도록 노력해 왔는데, 그 기반이 되는 것이 내셔널리즘을 강화시키도록 하기 위한 프로파간다였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내셔널리즘이라는 단어를 일본어에서는 '국가주의', '국수주의', '민족주의' 등으로 번역하는데, 중국의 경우 한(漢)민족 특유의 자기의식이 기초가 되기에 '민족주의'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이다. 어쨌든 중국공산당은 일본에 관해서 일청전쟁에서 굴욕적인 패배부터 일중전쟁에서의 후퇴, 난징(南京) 학살 등 일본의 마이너스한 부분만을 가르치며, 도의적 겸 증오의 차원에서의 내셔널리즘으로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심고 있다고도 기술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 교수의 논문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분노의 내셔널리즘은 우선적으로 일본에 향해지겠지만 결국 미국도 그 대상이 된다. 중국이 타이완(臺灣)과 일본, 양쪽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미국이 타이완과 일본을 지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크다. 한국전쟁 때 미국이 제7함대를 타이완 해협으로 파견하지 않았다면 중국은 벌써 타이완을 병합하였을 것이다.[각주:1] 일본이 센카쿠 문제 등으로 중국에 거역하는 것도 미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고 있는 것에 큰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중국공산당에게 있어 영원한 통치의 정당성은 자국의 내셔널리즘을 촉진해 온 것에 있다. 내셔널리즘에 철저한 정치집단이 나라 전체를 통치해 가야만 한다는 인식이다. 이 내셔널리즘 인식은 차기 정치지도층을 선택하는 회의가 한창 진행될 때 특히 중요해진다"

 즉 중국공산당은 이 내셔널리즘과 일체가 된 '반일'이야말로 통치하는 자신들의 정당성의 근거로 사용하고 있다 – 는 지적인 것이다.


반일감정은 하의상달식의 형태로 활발해지고 있다.

 사실 필자는 그러한 점에 대해 그리스 교수와 4년 전에 이미 개별인터뷰로 견해를 물어본 적이 있다. 2008년 7월 일중관계가 단기간이지만 소강상태인 시기였다.

 그때 그리스 교수의 견해를 일문일답의 형식으로 소개하겠다. 여기서 현재 중국의 반일데모에 숨겨져 있던 진실이 떠오를 것이라 생각한다.

- 중국의 내셔널리즘의 특징은?

"내셔널리즘이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국민이 자국에 대해서 품고 있는 소속감과 지지 의식을 지칭하는 것인데, 중국의 경우에는 굉장히 특수한 형태로 민족문화, 특히 한(漢)민족의 피가 기반이다. 중국은 문화면에서 자국의 오래된 문명에 대한 자긍심이 주된 것이며, 근년에는 거기에 역사상의 굴욕이라는 요소에서 오는 피해자의식이 가미되었다. 그 피해자의식에서 오는 분노가 일본으로 향해졌다고 말할 수 있다."

- 중국의 그 내셔널리즘은 일본에 대한 태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불행하게도 중국의 대일정책형성에는 이 내셔널리즘이 주요인의 하나가 되어버렸다. 이는 일중양국에 있어서도, 북동아시아의 평화나 안정에 있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1990년대까지 중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역사인식에서도 '중국공산당의 지도로 일본의 제국주의자를 타파했다'는 식으로, 중국측의 승리나 영웅주의 강조가 주된 것이었다. 그런데 95년 즈음부터 애국주의교육이 개시되며 중국측의 역사교과서가 바뀌어, 제2차대전의 새로운 해석, 난징학살의 새로운 논의 등으로 인해 대일인식도 변했다. 일본은 중국문화에서 오랜 기간 수혜를 입었음에도 그 은혜를 잊고 일청전쟁에서 중국을 이겼고, 이후에도 침략을 계속했다는 역사해석이 퍼졌다. 일본측의 잔학성이나 불공정을 선전해서, 일반중국인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식으로 하여 현대 중국측의 가진 반일감정의 기반이 되었다. 이 감정은 영속성이 강하다. 이러한 점에서는 중국측의 대일감정은 다른 외국에 대한 감정과는 굉장히 다른 것이다."

- 중국 당국이 자국민의 반일감정을 강화시키고 그것을 대일정책의 도구에도 사용한다는 것인가?

"확실히 중국 당국은 자국민의 반일감정을 일본과의 외교나 비즈니스에도 이용하는 일이 많다. 역사카드에도 잘 사용한다. 하지만 반일감정은 상층부에서가 아닌 일반국민에서 시작되는 하의상달이라는 형태로 발달된 부분도 있다. 난징학살의 기념관설립은 해당 지역민의 요구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때문에 국민의 반일감정이, 정부가 원래 바라던 것보다 더 강경한 대일자세를 취하게 하는 일도 있다. 2005년 봄의 반일데모 때도 그러했다."

- 중국공산당 통치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자국민에게 일본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을 갖게 만든다는 지적도 있는데?

"우리 공산당이야말로 일본의 군국주의세력을 물리치고 중국을 해방했다. 그러나 여전히 일본은 군국주의를 부활시킬 위험이 있기에 우리 공산당이 계속 정권을 잡고 있어야만 한다는 '정당성'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반일감정에는 당의 바람대로 되지 않는 부분도 있다. 코이즈미[小泉]정권시절, 중국 당국이 코이즈미 이치로우[小泉一郎] 수상을 굉장한 비난한 적이 있었는데, 중국 일반국민들은 그것을 보고 더욱더 부정적인 코이즈미 시각을 갖게 되었다. 그렇기에 그런 일반국민의 과격한 증오 때문에 중국 지도자가 코이즈미 수상과 회담을 하고자 하여도 불가능해진 것이 그 실제적인 예이다."

- 일중관계의 현재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표면적으로는 확실히 개선되고 있는 듯이 보인다. 그러나 기본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과거 요 수년 동안 일어난 민간레벨의 충돌이 또다시 일어난다면 중국측에서 과격한 반일데모가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상기의  '일중관계의 현재 상황'이라는 것은 2008년 7월 시점에서의 상황을 말한다. 그 4년 뒤인 현재, 중국에서 활발한 반일데모가 일어난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그리스 교수의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진 것이  된다. 그리고 현재 중국에서의 '반일'은 내셔널리즘의 발로로서 중국 공산당정권의 존속에 필요한 활력제가 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1. 중국은 1950년 10월 타이완 침공계획을 세우고 있었으나, 6.25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미국이 대비의 측면에서 타이완해협에 제7함대를 배치...한 것을 말하는 듯. [본문으로]

출처: http://jbpress.ismedia.jp/articles/-/34593
저자: 아이바 히데오[相場 英雄]

1월에 한국을 대표하는 자동차와 전자회사의 연간업적이 발표되었다. 일부 전문지나 비지니스 잡지에서는 크게 보도하였지만, 일본 주요 신문사나 방송국에서 세부사항까지 전한 곳은 극히 일부였다.

대지진의 영향이나 엔고, 태국 홍수피해 등 일본기업을 둘러싼 환경이 가혹할 정도로 좋지 않아 주력업종인 자동차, 전자업계의 업적은 참담하였다. 일본기업은 한국기업에 지분률을 계속 빼앗기고 있는데, 그 요인은 외부의 돌발적인 사건만으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일본 회사들이 한 묶음이 되더라도 한국 주요기업에게는 안 된다.

2월 초순. 일본의 종합전기, 민간 대형 전기업계의 2012년 3월의 연결 업적 전망이 나왔을 때, 어느 대형일간지에 이런 헤드라인이 찍혀있었다.

“한국 기업들의 거센 추격으로”…

칼럼 첫머리에 언급했듯이, 일본의 종합전자나 자동차 각 회사는 이번에 돌발적인 외부요인으로 힘들었다. 그 틈을 타서 한국이나 대만 그리고 중국의 신흥기억이 일본기업을 몰아붙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칼럼에서도 언급했지만, 새삼 강조해 두고 싶다. ‘한국 기업의 거센 추격’이라는 것은 명백한 사실오인이다.

액정패널이나 반도체 제조의 삼성전자를 살펴보자. 삼성의 작년(2011년) 1년간 얼마나 번지를 나타내는 영업이익은 16조 2000억 원. 일본엔 환산으로 약 1조 1000억 엔이다.

참고로 파나소닉의 2012년 3월기 예상(미국회계기준)은 300억 엔이다. 여러 악조건으로 인해 당초 예상의 1300억 엔의 흑자에서 하향수정 된 것을 감안하더라도 삼성의 이익이 얼마나 거대한 액수인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알기 쉽게, 삼성의 1조 1000억 엔이라는 영업이익은 일본의 주요 전자 회사의 이익을 모두 더한 액수보다도 큰 것이다. ‘한국 기업의 거센 추격’이라는 헤드라인이 엉터리 오보임을 알 수 있으실 것이다.

비슷한 방법으로 현대자동차를 살펴 보자. 현대에 대해서는 매출에 대해 영업이익의 비율을 나타내는 영업이익률을 예로 들어 보자. 현대의 경우 영업이익률이 14%이다.

이익폭이 굉장히 큰 고급 스포츠카에 특화된 독일 포르쉐각 약 12%. 소형 대중차나 중형 세단이 주력인 현대자동차의 체질이 얼마나 튼튼한지를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전자와 마찬가지로 영업이익률에 대해서도 일본 회사들과 비교해 보자. 토요타 자동차의 올 시즌 예상은 1.1%, 혼다는 2.5%. 열세인 일본 자동차 회사 중 유일하게 호조라는 닛산 자동차조차 5.4%에 머물고 있다.

“국제적인 시장으로 보면, 한국 주요 메이커는 일본 자동차 회사들에 비해 4바퀴나 5바퀴 앞서고 있다는 것이 틀림없는 사실”
(외자계 자산운용회사 애널리스트)

의 말에 따르면, 앞으로도 한국회사는 일본 메이커에 한층 더 간격을 벌려놓게 된다.

필자는 예전 이 칼럼란에서 『’메이드 인 저팬’이 사라지는 날』이라는 칼럼을 썼었다. 오버스펙인 일본제품을 대신하여 한국이나 신흥국 제품의 비율이 급격히 높아지고 있음을 예상하는 내용이었다.  공교롭게도 2년 반이 지난 지금 일본의 주요기업이 가볍게 제쳐진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이젠 일본 전체가 갈라파고스화

한국기업은 기록적인 원 약세를 바탕으로 수출을 늘려 세계적인 지분률을 늘리고 있을 뿐. - 그런 비판이 들릴 듯 하지만 앞서 보여드린 듯이 수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막대한 이익을 신속히 신제품의 연구개발비로 쏟아 붓기에 강한 기업이 더 강해지는 것이 제조업의 구조”
(외자계  증권 애널리스트)

현실적인 문제로서 리엔지니어링으로 악전고투하고 있는 일본기업에 돌아선 기술자는 수없이 많다. 한국, 대만이나 중국의 신흥기업이 높은 연봉과 충실한 연구시설, 스탭을 준비해서는 계속해서 일본인 기술자를 헤드헌팅하고 있는 것 역시 틀림없는 사실인 것이다.

앞선 칼럼 『세계의 중심에 없는 하이브리드 카』에서 필자는 일본의 하이브리드 기술이 일찌감치 세계의 조류에서 멀어졌다는 것을 언급하였다. 피처폰이 해외 메이커의 스마트폰에 밀린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전자업계와 자동차업계도 신흥세력에 추월 당할 것이라는 염려를 떨칠 수가 없다.

이 컬럼란에서 몇 번이나 언급했지만 일본 메이커는 해외시작에서 침식 당한 지분률을 비교적 비싼 국내 상품 가격으로 보충하여 어떻게든 버텨왔다. 하지만 이러한 고육지책은 국내시장에서도 여유가 없어짐에 따라 통용되지 않게 되었다. 일본 미디어가 세계 업계도식의 전체상을 제대로 전하지 않던 중 일본 기업의 자리는 차츰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3년 전까지 파나소닉의 휴대전화를 4대 연속으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애플의 ‘아이폰’을 구입한 이후 피처폰은 더 이상 쓰지 않는다.

또한 최근에는 11년간 사용해 왔던 파이오니아의 플라즈마TV가 수리불능일 정도로 고장 났기에, 한국LG의 LED액정으로 바꾸었다.

독자들도 필자처럼 바꾸신 분들이 많으실 것이다. 일본 메이커가 상상하고 있는 이상으로 일본기업 전체의 쇠퇴, 갈라파고스화는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