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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9 토리이 스네에몬[鳥居 強右衛門] - 처형대의 용사 3

 사시모노[指物]라는 것은 무사(武士)가 전쟁터에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고자 등에 매다는 작은 깃발을 말한다. 그 사시모노에 토리이 스네에몬[鳥居 右衛門]의 모습을 그리게 한 사람이 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川 家康]의 부하 오치아이 사헤이지 미치히사[落合 左兵次 道久]였다. 그는 실제로 자신의 눈으로 처형당한 스네에몬을 보고 사시모노의 그림으로 처형대 위의 처참한 모습의 스네에몬을 그린 것이었다.

 이 사시모노는 대대로 오치아이 가문의 자손에게 전해졌고, 현재 토우쿄우 대학[東京大学] 사료 편찬소에 보존되어 있다.[각주:1]

 그럴 정도로 토리이 스네에몬의 용기는 센고쿠[戦国]의 사람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준 것이었다.

 

 1575 4.

 토쿠가와 측의 나가시노 성[長篠城]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해있었다. 남은 군량은 불과 4~5. 성은 25천의 타케다 군에게 물샐틈없이 포위당해 있었다. 남아있는 계책도 없어 이제는 성안에 있는 병사 모두가 뛰쳐나가 옥쇄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나가시노 성주 오쿠다이라 노부마사[平 信昌][각주:2]는 당시 24. 예전에는 부친 사다요시[貞能]와 함께 타케다 씨[武田氏]에 속해있었지만, 신겐[信玄]이 죽은 후 토쿠가와 측으로 말을 갈아탔다.

 오쿠다이라 부자의 배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타케다 카츠요리[武田 勝頼]가 군사를 일으킨 것이 이 싸움의 시작이었다.

 오쿠다이라 노부마사의 배후에는 토쿠가와-오다 연합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군세가 제 시간에 맞추어 와주기만 한다면…'

 그때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이 위기를 버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쨌든 이에야스에게 이 어려운 상태를 하루라도 빨리 호소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타케다 군의 엄중한 포위를 뚫고 사자를 보내야 했다.

 처음에 성주 노부마사는 오쿠다이라 지자에몬[平 次左衛門]이라는 수영을 잘하는 자에게 명령을 내리려 하였었다. 그런데 지자에몬은 거부했다. 성안에서 탈출한 다음에 만약 성이 함락당하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후세에까지 도망자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른 자들도 그러한 이유로 사자의 임무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노부마사는 결심했다. 자기 한 사람 배를 갈라 개성한다면 가신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하고 그 각오를 성병 모두에게 털어놓았다. 토리이 스네에몬이 자원한 것은 이 때였다. 이때 스네에몬 36.


 스네에몬이 성을 빠져나온 것은 14일 밤이었다. 운 좋게 가랑비가 내리는 어두운 밤이었다. 그럼에도 물샐틈없이 포위하고 있는 타케다 군의 눈을 피해 빠져 나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화장실의 하수구를 이용하였다. 암벽을 내려오면 칸사가와 천[川]이었다. 천바닥으로 잠수하였다. 강 건너편에 닿아 올라서자 방울 달린 줄이 장치되어 있었다. 조심스레 그것을 잘랐다

 

 다음 날인 15일 새벽.

 간보우도우게 고개[鴈峰峠]에 한 줄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탈출 성공 시에 피우기로 했던 약속한 신호였다.

 그 후로는 모든 것이 착착 진행되었다. 이에야스와도 만났다.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와도 만날 수 있었다.

 

 16.

 간보우도우게 고개에서 두 번째 연기가 하늘로 올라갔다. 구원 결정의 신호였다.

 스네에몬은 구원의 군세가 온다는 것을 성의 모두에게 자신의 입으로 전하고 싶었다. 노부나가는 위험하게 타케다의 포위진을 돌파하면서까지 성에 돌아갈 필요는 없다. 오다 군과 동행하라고 말해 주었지만, 그것을 뿌리치고 또다시 적지에 잠입한 것이었다.

 스네에몬은 나가시노 성()의 건너편인 시노바노[篠場野]라는 곳까지 도착했다. 이제 성은 눈 앞이었다.

 

 그러나 피어오르는 연기를 의심하였는지 타케다 측의 경계는 한층 더 삼엄해져 있었다. ()을 두르고, 바리케이트[鹿垣]를 설치하여 바닥에는 모래까지 뿌려 발자국까지 확인하려 하였다.

 스네에몬은 이 때문에 자기도 모르게 머뭇거리게 되었고 거동이 수상한 자라 하여 타케다 측에 잡혀버렸다. 타케타바[竹束][각주:3]를 든 타케다의 아시가루[]로 변장하였다가 각반의 형태가 다른 다는 것을 검문 받아 잡혔다고도 한다.

 

 어쨌든 카츠요리 앞으로 잡혀온 스네에몬은 숨기지 않고 밀사의 임무를 진술하였다.

 이때 카츠요리[頼]는 오히려 스네에몬을 칭찬하였다고 한다. 가신으로 맞이하여 중하게 쓰겠다는 말까지 하였다. 그리고 하나의 임무를 명하였다.

 나가시노 성[長篠城]의 정면에 처형대를 세우고 거기에 묶인 스네에몬이 성안의 병사들을 설득하는 것이었다.

 - 노부나가의 원군은 오지 않는다. 이젠 성문을 열고 항복하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다.

 고 말하라는 것이었다. 스네에몬은 이 명령을 받아들였다.

 목숨만 구해주신다면 어떤 일이건 하겠습니다. 더군다나 땅까지 주신다니 이보다 고마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처형대가 높이 세워졌다. 기둥에 묶인 스네에몬에게 초여름의 태양이 내리쬐고 있었다. 눈 앞의 나가시노 성벽에 많은 동료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타케다의 군사들도 숨을 죽이고 처형대 위에 시선을 모으고 있었다.

 스네에몬의 입이 열렸다. 큰 목소리였다.

 노부나가님은 이미 오카자키[岡崎]에 와 있으시다. 이에야스님도 노다[野田]까지 군을 진출시키셨다~”

 카츠요리를 시작으로 타케다의 군사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하였다. 그러나 스네에몬의 목소리는 한번 더 나가시노 벌판에 울려 퍼졌던 것이다.

 성안의 모두들~ 반드시 3일안에 원군이 온다!”

 타케다 측에 혼란이 일어났다. 병사들이 처형대로 달려갔다. 몇 자루나 되는 창이 스네에몬의 몸을 찔러 반대편으로 뚫고 나왔다.

 

 1575 5 21.

 타케다 카츠요리의 25천의 대군은 오다-토쿠가와 연합군에게 나가시노 성밖의 시타라가하라[原]에서 괴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 전투에서 타케다 군은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 昌景], 바바 노부하루[馬場 信春], 사나다 노부츠나[ 信綱] 등 신겐 때부터 활약해온 용장들을 다수 잃었으며, 카츠요리 자신도 겨우 도망쳤다.

 

[토리이 스네에몬(鳥居 右衛門)]

오쿠다이라 노부마사[ 信昌]의 부하로 미카와[三河] 이치다[市田]에서 태어나 이름을 카츠아키[勝商]라 하였다고 한다. 나가시노 성터 부근의 스네에몬 처형장터에는 석비가 서있다.

  1. 위에 있는 그림을 말한다. [본문으로]
  2. 이때는 아직 사다마사[貞昌]. 후에 노부나가[信長]에게 이름글자 ‘노부[信]’를 하사 받은 다음부터 노부마사[信昌]라는 이름을 쓴다. [본문으로]
  3. 철포 탄환을 막기 위해 대나무를 묶은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