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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부 토라마사

일본서적 번역/전국무장의말년(了) 2004. 12. 23. 02:06 Posted by 발해지랑

오부 토라마사(飯富 虎昌)

1565 8월 모일 할복 나이 불명.


생년 불명 ~ 1565.

타케다(武田)후다이(譜代)의 신(). 노부토라(信虎), 신겐(信玄)을 섬겼으며 시나노(信濃) 우치야마(內山)성주를 역임했다. [아카조나에(赤備え)[각주:1]]를 처음 만든 사람으로 여겨지며 맹장으로서 유명했지만 신겐의 적자(嫡子) 요시노부(義信)가 세운 모반(謀叛)에 관련되어 할복하였다. 신겐의 중신 야마카타 마사카게(山県 昌景)는 동생.









영광스런 전력(戰歷)


 오부 효우부쇼우유우 토라마사(飯富 兵部少輔 虎昌)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떠올리는 것이 영광스러운 타케다 가문(武田) 중진(重鎭)으로서의 위엄있고 중후한 모습이었다.

 타케다 노부토라(武田 信虎) 휘하에서 갑옷과 투구는 물론 무구 일체를 붉은 색으로 통일한 소위 [오부의 아카조나에(飯富の赤備え)]라는 이름으로 적에게 공포를 안겨준 기마병단(騎馬兵団)을 조직해서는 오다와라(小田原)의 호우죠우 우지츠나(北条 氏綱), 시나노(信濃)의 무라카미 요시키요(村上 義淸) 등과 싸워 승리하는 화려한 전력의 소유자였다.

 거기에다 1541년에는 이타가키 노부카타(板垣 信方)와 함께 노부토라(信虎)를 순푸(駿府)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 義元)에게로 축출하여 하루노부(晴信 = 신겐(信玄))의 정권을 세운 일등공신인 것이다.

 [갑양군감(甲陽軍鑑)]에서도 오부 효우부를 평하길 [지략발군(智略拔群)의 효장(驍将)]이라 기록하고 있다.


 누구나가 그의 말년은 온갖 영광과 함께 흔들림 없는 중진의 모습을 상상했을 것이며 더군다나 그가 하루노부(晴信)의 장남 타로우(太郞) 요시노부(義信)의 후견인 겸 스승에 임명되었기에 한층 더 그러한 생각을 강하게 가지게 했었을 것이다.

 타로우 요시노부가 16살에 처음으로 전쟁터에 나섰을 때(初陣) 그에게 갑옷을 입힌 것이 오부 효우부였으며, 하루노부 즉 신겐은 오부 효우부 및 하라 미노(原 美濃), 오바타 야마시로(小幡山城), 야마모토 칸스케(山本 勘助) 네 명에게 손수 술을 따라주었기에 부하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일이 없었다며 감격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그에게 후일의 비극을 암시하는 듯한 사건이 발생한다.


반란일으키다.


 사건의 발단은 타로우 요시노부가 1561 카와나카지마(川中島) 전투 부친 신겐(信玄)의 전술을 비판했던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를 불쾌히 여긴 부친과 비판한 것을 당연히 여기는 아들 사이의 틈은 벌어져만 갈 뿐이었다.

 사태를 걱정한 코우후(甲府)의 다이센(大泉)()의 주지 코우덴(高伝)과 시나노(信濃) 이와무라타(岩村田)의 홋코우(払口)화상(和尙)이 부자간의 화해를 위해 노력했지만 성과 없이 불화는 심각해져만 갔다.

 더구나 신겐은 요시노부를 약이라도 올리 듯이 측실 스와고료우진(諏訪御料人)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시로우 카츠요리(四郞 勝頼)를 이나군다이(伊那郡代) 겸 타카토오(高遠)성주에 임명하여 아토베 시게마사(跡部 重政)등을 포함한 믿을 수 있는 8명의 무장을 부속시켜 주었다. 이것을 보고 요시노부는 어떤 생각을하였을까?


 요시노부에 관해 [갑양군감(甲陽軍鑑)]너무 똑똑한 젊은 주군이라 기록하고 있듯이, 부친은 후계를 시로우 카츠요리에게 물려줄 생각인가? 고 나름 억측하여 자신의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더욱이 확인 사살이라도 하듯이 신겐은 스루가(駿河)로 진공(進攻)을 기도했다. 1560 5월 이마가와 요시모토(今川義元)가 오케하자마(桶狹間)에서 오다 노부나가(織田 信長)에게 패사하였고 그로 인해 이마가와 가문(今川)이 약체화 된 지금이야 말로 바라 마지않던 스루가(駿河)를 탈취할 절호의 기회라는 것이 신겐의 생각이었다.

 요시모토의 부인은 신겐의 누나이기에 이마가와 가문을 상속한 것은 외조카인 우지자네(氏真)였다. 더구나 요시노부의 부인도 우지자네의 여동생이었기에 요시노부는 스루가 침공에 강력히 반대하였으나 영토욕(領土欲)에 불타는 부친 앞에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요시노부는 어두운 얼굴로 침묵을 지킬 뿐이었다.


 그리고 [1564년 7월 15]이라고 [갑양군감(甲陽軍鑑)]에는 기록되어 있는데 요시노부가 나가사카 겐고로(長坂 源五郞)와 메노토소네 수오우(乳母曽禰 周防) 두 사람과 함께 등롱(燈籠) 구경이라는 명목으로 오부 효우부의 저택을 방문하여 새벽 2 즈음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조심스럽게 돌아갔다. 이것을 목격한 밀정이 다음 날인 16 요시노부에게 수상적은 행동이 있다고 신겐에게 보고했다.


 그 때 신겐은 [오야마(御山)]에 있었다.

 오야마라는 곳은 목욕탕에서 사용한 물을 이용하여 더러운 것을 치울 수 있게 한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여기서 신겐은 향을 피워놓고 여러가지 생각에 몰두하거나 서장을 읽고 밀정의 보고를 받았다. 물론 경계는 엄하였고 방문 뒤에는 하라 하야토(原 隼人), 오부 겐시로우(飯富 源四郞 = 야마가타 마사카게(山県 昌景)등 믿을 수 있는 부하들을 항상 배치시켜 놓고 있었다.

 때마침 방 문 뒤에서 이것을 듣고 있던 오부 효우부의 동생인 겐시로우가 품안에서 요시노부가 직접 반역의 뜻을 적은 편지, 즉 오부 효우부에게 보내진 편지를 꺼내어 신겐에게 받쳐 신겐 추방의 쿠테타가 밝혀지게 된다. 이는 효우부 자신이 희생하여 죄를 뒤집어 씀으로써 쿠테타를 미연에 방지했다고 하는 형제공모설도 있지만 사실일지 어쩔지 어쨌든 영광스러운 말년이 준비되어 있던 듯이 보였던 오부의 말년은 일순간에 할복의 지옥으로 바뀌었다.

  1. 무구 일체를 붉은색으로 칠한 부대.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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