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

 이 1586년 12월에 칸파쿠(関白) 히데요시는 다죠우다이진(太政大臣)이 되어 토요토미(豊臣)라는 성(姓)을 하사 받음으로써 타이라 씨(平氏), 미나모토 씨(源氏), 후지와라 씨(藤原氏)라는 고귀한 성(姓)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일본 귀족으로서의 위치와 체면을 확립하였다.
 이 때문에 히데요시는 궁중에서의 예식이나 축하연회 등으로 쿠게(公家) 사회에서의 사교로 매우 바빴다. 쿄우(京)에서는 쥬라쿠테이(聚楽第)에 주거하고 있었다. 쥬라쿠테이는 이 해의 2월에 완공되었고 키타노만도코로(北ノ政所[각주:1])와 오오만도코로(大政所[각주:2])도 불려와 그대로 쿄우(京)에 있었다.


 오오사카(大坂)에는 챠챠(茶々)가 있었다. 챠챠에게는 토요토미 가문 일족의 쿠게(公家) 사교에 참여할 명분이 없었기에 사람들의 입으로 쥬라쿠테이의 화려함을 듣기만 하고 있었다.
 - 한번 보고 싶구나
 하고 유모에게도 말하였지만 이것만은 유모도 어찌 해 줄 수 없었다. 쥬라쿠테이는 친왕, 상급귀족(公卿), 몬제키(門跡[각주:3]) 그리고 위계가 높은 무장들의 사교 장소이기에 아무런 위계도 가지지 못한 몰락 다이묘우(大名)의 고아가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

 “정말 화려하겠구나”

 챠챠는 동경하는 듯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키타노만도코로는 위계를 가지고 계신가?”

 “칸파쿠의 부인이시니까요.”

 여성이면서 종이위(從二位)였다. 다이나곤(大納言) 등보다도 상석이었다.

 굉장히 화려할 것이다. 챠챠는 쿄우(京)의 번화함을 상상하였다. 온갖 꽃들이 화려하게 피여서는 저마다의 미를 자랑하는 화원을 연상했다. 쥬라쿠테이 주변에는 끊이지 않고 음악이 울려 퍼지며 시회(詩會)나 다회(茶會)가 열리고 항상 그 중심에 히데요시와 키타노만도코로가 있을 것이다.

 어느 날.
 히데요시가 갑자기 오오사카 성(大坂城)으로 내려왔다. 성안은 북새통이 되었다. 히데요시는 자기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챠챠의 유모를 불렀다. 유모는 서둘러 수 많은 복도와 복도를 가로질렀다. 히데요시는 이외로 혼자 있었다.

 “여어~”

 하고 히데요시는 유모의 얼굴을 보자마자 자신의 얼굴을 쓰윽 쓰다듬었다. 식초라도 마신 듯한 얼굴을 하고서는 더구나 쪽팔리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알겠나? 이 얼굴”

 히데요시는 자신의 얼굴을 거울도 보지 않고 아는 것 같았다. 이 얼굴을 보아라, 이 얼굴로 추측하라, 쪽 팔려서 입으로는 말할 수 없다 – 고 말했다. 유모는 넙죽 엎드려 절을 하였다. 유모는 이해했다. 챠챠를 말하는 것이다.

 “마음이 답답하여 참지 못하고 이렇게 오오사카로 돌아왔네. 알겠나? 내일은 쿄우(京)로 돌아간다”

 ‘내일은 쿄우에?’
 그렇다면 오늘 밤만이 기회였다. 이렇게 경황없는 명령이라니……

 “허락하마. 그 편지상자를 열어보아라”

 히데요시는 말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유모는 눈 앞에 편지상자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황송해하며 그것을 열어 안에서의 한 장의 시가 적힌 종이를 꺼냈다. 놀랍게도 연애시였다. 히데요시는 요즘 시에 열심으로 또한 현실적인 필요로 인해 쿠게(公家)의 습관에 익숙해지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모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연애에 대해서까지 쿠게(公家) 풍으로 흉내 내려는 것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이 사람을 꼬시는 데 있어서의 천재가 챠챠에게만은 이렇게 고풍스런 수단을 이용함으로써 챠챠에 대한 존중을 나타내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이 익살꾼의 단순한 장난인가?

함께 자고픈 마음이 오오사카에 다녀온 듯하다
팔베개하며 꾼 오늘 밤의 꿈.
想い寝の心や御津に通ふらむ
今宵逢ひみる手まくらの夢

 음률도 갖추어져 있었다. 히데요시 시의 첨삭은 호소카와 유우사이(細川 幽斎)가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 시도 그런 것일까?

 “내가 만든 시다”

 히데요시는 일부러 말했다. 유모는 황송해하며 그것을 편지상자 집어넣어 뚜껑을 덮고 보라색 끈을 묶어 머리 위로 공손히 들어올렸다.

 “오늘 밤 술시(밤 여덟 시)에 건너가겠다. 이불에 있으라고 하라, 누워 있으라고 전해라”

 하고 딱 잘라 말했다. 이런 것은 쿠게(公家) 풍이라기 보다는 말 위에서 천하를 획득한 무사 정권의 우두머리다웠다.
 유모는 물러나려 하였다. 하지만 히데요시가 불러 멈추게 하고는 시동(児小姓)을 불렀다. 시동은 흰 나무로 된 작은 상을 머리 위로 받쳐들고 와서는 유모 앞에 내려 놓았다. 하사품이었다. 더구나 황금이었다. 유모는 물론 받을 수밖에 없었다.

 유모는 히데요시의 방에서 나와 긴 복도를 건너면서 생각하였다.
 ‘전하는 3년이나 공들이셨다’
 라는 실감을 강하게 느끼고 있었다. 유모도 일찍부터 히데요시의 좋은 도우미가 되어 있었다. 다른 오우미 사람(近江人) – 예를 들어 이시다 지부쇼우유우 미츠나리(石田 治部少輔 三成) 등에게서도 유모는 이런 경사스러운 일이 어서 와야 함에 대해 음습한 기대가 담긴 말로 들은 적도 있었다. 어쨌든 챠챠가 가지고 있는 히데요시에 대한 인상이 좋아지도록 얼마나 신경을 쓰며 얼마나 손을 써 왔는지 몰랐다. 그것은 우선 성공하였다. 유모에게 있어 적어도 운이 좋았던 것이 챠챠는 그녀의 모친인 오이치(お市)처럼 도리가 명쾌한 뚜렷한 성격이 아닌 감정적으로 무엇이든 그렇게만 사물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에, 그런 점에서 유모는 제대로 처리해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멋대로이고 변덕스러운 성격이기에 막상 그 때가 되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해’
 유모는 혼잣말하며 스스로를 고무하였다. 그것이 결국 챠챠에 대한 충성이 되는 것이며, 결코 꿈에서라도 – 챠챠를 황금에 판 것은 아닌 것이다.

 이날 밤.
 술시. 히데요시는 챠챠의 방으로 들어갔다. 이불에 있어라, 누워 있으라고 유모에게 명령해 두었는데도 챠챠는 옷을 입은 채 촛대에 둘러싸여 앉아있었다.

 “여어~ 이 향은?”

 하고 히데요시는 순간적인 이야깃거리를 만들어 자신을 쪽팔림에서 건져 올리려 하였다. 방에는 향이 피워지고 있었다. 향이 피워지고 있다는 점에서 보면 히데요시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향은 여러 종류가 섞인 혼합 향(組香)인 듯 했다. 그런 쪽 길을 가고 있는 사람이라면 코로 하나하나 맞출 수 있다.

 “향의 이름은 무엇인고?”

 히데요시는 턱을 들어 콧구멍을 벌름거렸지만 이제 막 쿠게(公家) 문화를 배우기 시작한 히데요시가 맞추기에는 무리였다.

 “어린 나물(若菜)의 향이옵니다”

 하고 챠챠는 희미하게 듣기도 힘들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답하였지만 목소리와는 반대로 그 눈은 거만하게 빛나고 있었다. 원래 챠챠는 히데요시에 대해서 그다지 예의가 바르지 못하였고 때때로 존대하기까지 하였다. 히데요시는 그것을 허용했다. 챠챠에 한해서는 에치젠(越前) 이치죠우다니(一乗谷)에서 만났을 때부터 계속 그런 태도를 허용해왔다. 다른 사람이라면 남성이건 여성이건 히데요시는 그런 태도를 허용하지 않았고 또한 그런 태도를 취하는 사람도 없었다.
 히데요시의 측실은 많았다. 오다 가문(織田家)의 방계 출신인 히메지도노(姫路殿), 아시카가 바쿠후(足利幕府)의 명문가인 쿄우고쿠 씨(京極氏) 출신 마츠노마루도노(松ノ丸殿), 가모우 우지사토(蒲生 氏郷)의 여동생 산죠우노츠보네(三条局) 등 많은 명문가 출신들이 있었지만 모두 히데요시 앞에서는 숨죽이고 그의 심기를 민감하게 살피며 열심히 섬겼다. 히데요시도 역시 그녀들에게 상냥하였으며 오히려 너무 상냥할 정도였다. 그녀들 또한 히데요시의 그런 상냥함에 감동하여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섬겼다. 하지만 이 챠챠만은 달랐다. 그 제멋대로인 성격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것 같았지만 히데요시 만큼이나 사람의 심성에 대해 정통한 사람도 그리 생각하지는 못하고 이 아가씨는 자신에 대한 원한을 잊지 못하여 어딘가에 항상 품고서는 계속 원망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고 해석하고 있었다. 반해있었던 것이다. 그 반해있음이 히데요시의 태도를 약하게 하였다.

 “이 향은 히메가 피운 것인가?”

 하고 히데요시는 비위를 맞추려는 듯 말했다.

 “아니요”

 하고 챠챠는 말하지 않고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챠챠라는 아가씨에게는 혼합 향을 조화시킬 수 있는 듯한 재주가 없었다. 이는 유모가 피웠다. 피웠을 뿐만 아니라, 아씨 잊지 마시옵소서. 이 혼합 향은 ‘어린 나물’이라고 하옵니다. 어린 나물이옵니다. 이와 연관된 옛 시(古歌)는 이것과 이것입니다, 하고 쪽지에 적어서는 하나하나 가르쳐갔다. 그랬을 뿐인 장치였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오해했다. 고개를 가로저은 것은 챠챠의 겸손함일 것이라 생각하여 그 교양의 깊음에 탄복하였다. 이런 점 - 사랑을 하고 있는 젊은이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나는 향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모른단다. 이 봄나물에는 어떠한 옛 시가 있는고?”

 “몇몇이 있사옵니다”

 하고 챠챠는 매우 부드럽게 답했다. 유모가 가르쳐 주었듯이 ‘어린 나물’에 연관된 옛 시 중 다음과 같은 것은 읊조렸다.

내일부터는 어린 나물을 캐자고 약속한 들에
어제도 오늘도 눈은 계속 내리고
明日よりは若菜摘むとしめし野に
昨日も今日も雪は降りつつ

 히데요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제도 오늘도 계속 내리는 눈’이라는 것은 거부하는 ‘수수께끼’인 것 같았다. 적어도 무언가의 사정으로 오늘은 어린 나물을 캘 수 없습니다, 고 챠챠는 말하는 듯했다.

 "허어~ 캘 수 없나?”

 히데요시는 그래도 한 번 더 확인하였다. 쿠게(公家)의 귀공자라면 아니 적어도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무렵의 도련님들이라면 이렇게까지 수수께끼가 던져지면 여성의 방에서 물러나 나중에 시를 보내는 것이 풍류를 아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같은 귀족이라도 말 위에서 검을 쥐고 칸파쿠(関白)의 의관을 쟁취한 전쟁터의 사나이였다. 물러나지 않았다.

 “히메! 기왕 이렇게 된 것이다”

 하고 히데요시는 오른손을 뻗쳤다. 행동이 시작되고 있었다. 뻗친 손으로 청자(靑磁)로 된 향로를 집어서는 뚜껑을 거칠게 열고 피워져 있는 불에 물통의 물을 부었다. 재가 일고 향기가 사라지며 동시에 ‘어린 나물’도 옛 시도 수수께끼도 사라졌다.
  키득, 하고 히데요시는 웃었다.
 ‘앗’
 하고 챠챠가 놀랄 정도로 히데요시의 웃는 얼굴에는 흠뻑 빠져버릴 듯한 애교가 있었다. 하지만 히데요시는 곧바로 그 웃는 얼굴을 지웠다.
 곧이어 챠챠를 노려보았다.

 “귀족놀이는 이제 그만하자”

 그것은 선언이었다. 무문(武門)에는 무문만의 사랑에 대한 작법이 있을 것이다.

 “오른손을 나에게 맡기라”

 위엄을 가지고 명령했다. 항복과 복종을 강요하는 것이 무문의 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방법이 오히려 히데요시에게는 더 나았다. 챠챠는 순종적이 되었다. 그 하얀 오른 손을 히데요시 쪽으로 내밀었다. 마음이 멍해지며,
 ‘무엇을 하려고?’
 하고 챠챠가 생각할 여유도 없이 히데요시는 그 손을 잡았고 잡자마자 챠챠를 무릎 위에 눕혔다.

 “챠챠야”

 하고 히데요시가 ‘히메’라는 존칭을 버렸을 때는 이미 챠챠의 몸이 공중에 떠 있었다. 놀랍게도 이 자그마한 남자의 어디에 그런 힘이 있는 것일까? 그대로 이불 위로 옮겨졌다. 그러나 거기서 히데요시의 힘이 다했다. 히데요시는 OTL이 되어 거친 숨을 토했고 토하고는 들이마셨다.

 “나도 늙었다”

 히데요시는 자조적이 되고 싶었을 터이지만 젊은 챠챠에게 허세도 부려야 했기에 무턱대고 큰 소리로 웃었다. 사냥감은 바로 앞에 뉘여있었다. 그러나 히데요시는 곧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였다. 숨이 진정될 때까지 뭔가를 떠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난 몸은 작지만 다할래야 다한 적이 없을 정도로 남들과는 다른 뛰어난 체력을 선천적으로 타고 났었지. 그러나 천하를 갈고 닦기 위한 큰일을 하다보니 조금 피곤해졌다. 옛날이라면 너 정도는 손가락 하나로 가볍게 들었을 텐데……”

 ‘거짓말
 하고 챠챠는 엎드려 있으면서도 저 초로를 훨씬 넘긴 남자의 허풍이 웃겼다.

 “챠챠야 내 아이를 낳아라”

 히데요시는 OTL인 채로 고개만 쳐 들고 말했다. 토요토미 칸파쿠 가문의 아이를 낳으라고 거듭 말했다. 히데요시가 이럴 때 쓰는 상투적인 문구였으며 어느 여성에게건 그렇게 말해왔다. 그러나 어느 여성도 그 명령에 따르지 못했다. 히데요시의 아기씨가 드문 것인지 아니면 우연히 석녀(石女)들과만 조우하였는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챠챠는 히데요시를 받아들이기 위한 자세가 취해졌다.
 받아 들였다.
 이 순간만큼 거대한 사건은 토요토미 가문 역사 속에서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없었을 것이다. 단지 자연적인 – 챠챠의 옷이 펼쳐지고 히데요시가 그 육체를 꽉 껴안았을 뿐인 단지 그랬을 뿐의 자연적인 행위가 이 순간부터 토요토미 가문의 체질을 바꾸기 시작했다고 말해도 좋았다. 오우미 파벌(近江閥)이 이 이불 속에서 성립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도 히데요시의 이 상냥함이란…… 그것이 끝났더라도 챠챠를 놓지 않았다. 이야기를 하였다. 이 가련한 이를 위해서 선물을 주고 싶었다.

 “성(城)을 갖고 싶지 않은가?”

 하고 히데요시는 챠챠의 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히데요시는 말했다. – 바다 건너온 비단이나 면으로 된 옷 같은 것을 사라, 시녀의 수도 늘려라, 그러나 챠챠가 가져야 할 것은 성이다. 성을 가지라는 것이었다.

 “성을?”

 챠챠는 놀람과 동시에 자신의 정부(情夫)는 보통사람이 아니라 천하의 지배자라는 것을 새삼 실감하였다. 천하인의 선물이라는 것은 당연 성이 아니면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저는 여자이기에 성은 필요 없사옵니다.”

 “사양하지 마라”

 히데요시는 말했다. 꼭 성을 주고 싶다. 그 이유로 히데요시는 쿄우(京)와 오오사카(大坂)를 왕복하니 그 중간인 요도(淀) 근방에 휴식을 위한 성을 하나 두고 싶었는데 그것을 쌓아 챠챠를 살게 하면 그녀도 기쁘고 자신도 편리했다.
 ‘단 다른 여성들에게도 납득시켜놓지 않으면 안 되지’
 다른 측실들은 모두 오오사카 성에서 살고 있는데 챠챠만이 [성주]가 된다면 대부분 질투할 것이다. 무엇보다 정실인 키타노만도코로가 심술내지 않도록 이것저것 이유를 만들어 설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히데요시의 버릇으로 생각나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빨랐다. 그날부터 몇 일 내에 동생인 야마토 다이나곤 히데나가(大和大納言 秀長)를 불러,

 “요도에 성을 쌓아라”

 고 명령했다. 장소는 카츠라가와 강(桂川)과 우지가와 강(宇治川)이 합류하여 요도가와(淀川)가 되는 합류점으로, 거기에는 예부터 아시카가 쇼우군 가문(足利将軍家)의 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불과 보루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그 폐허인 성을 부활시켜 작지만 견고한 성을 만들어라, 건물을 화려하게 지어라, 귀부인을 위한 건물로 해라, 여성 침실의 앞마당에는 꽃나무를 잊지 말도록, 화장실도 특별히 생각을 해서 만들라고 명했다.

 요도 성(淀城)은 5개월 만에 만들어져 챠챠는 오오사카에서 거기로 옮겼다. 아자이 씨(浅井氏) 일족이나 시녀를 포함하면 이 새로운 성에서 생활하는 사람 수는 남녀 200이 넘을 것이다. 챠챠는 세간에게 ‘요도도노(淀殿)’라 불렸으며 히데요시에게는 ‘요도노모노(淀の者)’, ‘요도노뇨우보우(淀の女房)’ 등으로 불리거나 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요도도노는,
 - 어머님(お袋様).
 이라고 세간에서 불리게 되었다. 히데요시를 위해서 첫아들 츠루마츠(鶴松)를 낳은 것이다. 하지만 이 츠루마츠는 2년 후에 죽었다. 히데요시는 크게 낙담하였지만 그러나 요도도노에 대한 애정은 더욱더 깊어졌다. 곧이어 조선침략이 시작되어 그 대본영인 치쿠젠(筑前) 나고야 성(名護屋城)에도 그녀를 데려갔다. 이 나고야의 행궁에서 요도도노는 또다시 임신했다. 히데요시는 춤을 추며 기뻐했다.
 - 남자아이를 낳아라
 고 히데요시는 요도도노의 배에 손을 대고는 굉장히 진지하게 빌었다. 토요토미 가문에 아이를 낳는다는 기적을 요도도노는 별 힘 안들이고 실현해 주게 되었다. 그 해 – 1593년 8월 3일. 요도도노는 이미 요도 성(淀城)에 돌아와 있었다. 이날 히데요시의 희망대로 남자아이를 낳았다. 


 히데요리(秀頼)였다.

  1. 히데요시의 부인 [본문으로]
  2. 히데요시의 모친 [본문으로]
  3. 거대 사찰 혹은 그런 사찰의 주지가 된 황족이나 상급귀족의 자제를 지칭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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